이 책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 남아있는 이들에게 큰 가르침을 주는 유언은 그 어느 명언보다 힘이 세다는 것을 깨달았고, 나 자신을 챙기기보다 다른 이들을 먼저 생각하고, 사람을 귀히 여기며 사랑을 주고 간 사람들의 삶은 그 어느 문학작품보다 더 큰 울림을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유언은 죽음에 임하여 남기는 말로, 한자로는 끼칠 유, 말씀 언 이라 쓰지만 영어로는 `will'이라 표현한다. 유언(遺言)이라는 한자어가 `마지막' 또는 `마침표'의 의미가 강하다면, `will'은 의지를 나타내는 조동사로 더 익숙한 만큼 미래를 향해 있는 단어다. 결국, 삶의 마침표인 죽음을 앞두고 남기는 말인 유언은, 자신의 결말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더 살아가야 할 후손들의 미래를 위한 엄숙한 가르침인 셈이다.
1971년 작고하신 유한양행의 설립자 유일한씨 그의 유언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첫째, 손녀인 유일링에게 대학 졸업때까지 학자금으로 1만달러를 준다. 둘째, 딸 유재라에게는 유한공고 안에 있는 묘소와 주변 땅 1만 6500㎡(5000평)를 물려준다. 그 땅을 유한동산으로 꾸며주기 바라며, 유한동산에는 절대로 울타리를 치지말고 유한 중·공업고교 학생들이 마음대로 드나들게 하여 그 어린 학생들의 티없이 맑은 정신에 깃든 젊은 의지를 지하에서나마 더불어 느끼게 해달라.
셋째, 일한 자신의 소유 주식 14만 941주는 전부 `한국 사회 및 교육 원조 신탁기금'에 기증한다.
넷째, 아내 호미리는 재라가 그 노후를 잘 돌보아주길 바란다.
다섯째, 아들 유일선은 대학까지 졸업시켰으니 앞으로는 자립해서 살아가거라.
당시 일곱 살이던 손녀의 교육비를 제외하고는 모두 사회에 환원한다는 내용이다. 딸에게 유한공고 안의 묘소 부지 1만 6500㎡(5000평)를 주었지만 그 역시 학생들이 드나들 수 있는 동산으로 꾸미라는 것이었다. 어떻게 하든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줘 고생 안 하고 살게 하려는 지금의 부모들에게는 이 유서는 지금에 와서 봐도 파격 그 자체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자기는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자녀들이 불만을 가지지 않을까'라는 걱정을 했지만, 유일한의 딸 유재라는 1991년 미국에서 세상을 떠나면서 스스로 일군 재산 전액을 `유한 재단'에 기부할 것을 유언으로 남겼고, `대학을 졸업했으니 자립하라'는 유언을 받은 아들 유일선도 아버지의 뜻을 이해했다.
“혼불 하나면 충분합니다 아름다운 세상, 잘 살다 갑니다.”
이 말은 혼불 한 작품만 남기고 떠난 최명희의 유언이다. 1947년생인 그녀는 1981년 동아일보 장편 소설 공모에 혼불 1부가 당선된 후 15년간 10권짜리 혼불을 완간하고 작품 완성 2년 뒤인 98년 난소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15년 동안 동아일보 소설 공모에 당선된 후 수 많은 안정된 직장을 뿌리치고 한 달 3만원으로 생활하며 혼불 한 작품에만 매달려 세계화 바람에 휩쓸려 사라져가는 우리 말과 글의 아름다움을 마술사처럼 되살려냈다는 평가와 함께 “구슬 목걸이 속의 보이지 않는 실의 존재처럼 나는 사라져도 혼불은 독자들 가슴에 남길 바랍니다”라는 인터뷰를 했다.
미국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쓴 마가렛 미첼이 있다면 한국에는 혼불의 최명희가 있다.
사람은 누구나 `어떻게 살 것인가' 끊임없이 고민한다. 반면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답은 미루어 두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훌륭한 삶을 살다간 이들이 우리에게 남긴 유언을 곱씹어 보자면, 이 두 가지 고민이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