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넉한 공간에 목욕탕까지 갖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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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넉한 공간에 목욕탕까지 갖춰

<499>

  • 승인 2009-07-27 17:36
  • 신문게재 2009-07-28 22면
  • 한성일 기자한성일 기자
대전지방경찰청은 재작년 충남지방경찰청에서 분가해 나왔으니 청사가 따로 없었다. 대전시 도심의 한 민간 빌딩에 세들어 있다가 둔산에 새 건물을 지어 이사했다. 그리고 어제 준공식을 가졌다. 축하할 일이다.

사업비가 300억원 가까이 들어간 새 청사는 연면적 2만1000㎡ 규모의 지상 10층 건물이다. 주차장도 400면이다. 새 청사는 350명의 직원이 사용하기에는 넉넉하다. 체육시설과 목욕탕까지 갖추었다. 대전지방경찰청에 근무하는 경찰관과 직원들은 쾌적한 공간에서 근무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사무실을 누구보다 널찍하게 쓰게 된 사람은 대전지방경찰청장이다. 중앙일보는 대전지방경찰청의 집무실이 전국의 경찰청 가운데 가장 넓다고 보도했다. 장관급 집무실에 비슷한 158m²의 경찰청장 집무실에는 화장실은 물론이고 침실까지 두고 있다.

청장 집무실을 그렇게 큼직하게 만들도록 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겠다. 근래 부임해온 유태열 대전청장은 분명 아닐 것이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시민들이 유 청장에 눈총을 준다면 다산(茶山)의 말을 빌려 해명할 수도 있겠다. 다산은 수령이 관사(官舍·청사)를 건축할 때는 아전(공무원 또는 경찰관)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라고 했다.

“이 집(청사)은 누구의 집인가? 수령(守令·경찰청장 혹은 경찰서장)은 나그네이니 내년에는 또 어느 곳에 있을지 모르는데 어찌 수령의 집이겠는가? 또 이것이 어찌 백성들의 집이겠는가? 아버지가 전하고 자식이 이어받아(세습되던 아전을 지칭) 볕을 가리고 비를 피하는 자가 너희(공무원)들이 아니고 누구이겠는가? 너희들 집을 짓는 데 나만 수고롭고, 백성들도 고통을 받게 하니 이러한 이치가 어디 있는가?”

새 관사의 덕을 보는 사람은 수령도 백성도 아닌 아전들이라는 뜻이다. 대전지방경찰청사의 경우도 사실상의 주인은 여기서 오래 일하게 될 경찰관과 직원들이다. 잠시 머물다 가는 경찰청장은 청사 사무실을 아무리 잘 꾸몄어도 자기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관사를 수리하거나 새로 지으려면 수령이 고생이 많고, 무엇보다 백성들의 세금과 부역이 필요했다. 더구나 관사가 화려하고 사치스러우면 그 비용과 노고가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탐욕스런 수령들에겐 관사를 짓는 일이 사욕(私慾)을 채우는 수단이어서 백성의 고혈을 짜내면서 새 관사를 짓는 경우가 있었다.

바로 이런 연유로 쓰러져 가는 관사조차 가급적 손대지 않으려는 게 법도 있는 수령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다산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황해도 곡산부사로 나가 있을 때 관사가 무너져 내리면서 아전과 군교가 다치는 장면을 목격했다. 다산은 `관사 문제'에 대한 기피가 `내(수령) 한 몸을 위한 것이지 다른 사람(아전)에게는 은택(恩澤·은혜와 덕택)이 아니다'는 사실을 현장에서 확인했다. 물론 관사를 새로 지었다.

다산은 또 관사가 화려하고 웅장한 것을 부정적으로만 보지도 않았다. 그는 관사의 수준을 그 시대의 경제력으로 보았다. 화려한 관사를 왕조의 번창으로 여겼다. 그러면서 다산은 “공해(公해·관사)의 흥폐(興廢·흥하고 망함)로 나라의 성쇠를 엿볼 수 있으니 어찌 힘쓰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하였다.

지금 다산이 돌아와서 대전경찰청사를 둘러본다면 그 평이 어떠할까? 넉넉한 공간에 각종 편의시설을 갖춰 직원들의 편의를 도모한 점은 칭찬할 것이다. 외벽을 유리로 장식하여 화려하게 꾸민 것도 좋다할 것이다. 다만 경찰청장 집무실을 너무 크게 만든 점에 대해선 그 이유를 따져 묻지 않을까 싶다.

자신이 아니라 아전들을 위해 관사를 재건축한 다산이었으니 말이다.

관사를 신축할 때는 낙성식날 고을의 부로(父老·원로)와 부민(富民·부자)을 불러 부조금(扶助)을 걷는 관행이 있었다. 부조금 걷기는 물론 폐습이었고, 다산은 절대 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지금도 원로와 시민들을 불러 경찰청 준공의 의미를 기리는 것은 좋을 것이다. 어제 대전경찰청 준공식에는 참석한 외빈 중에 경찰 관련 사회단체를 빼면 `보통시민'은 없었다. 또 한가지 아쉬운 점이었다.

/김학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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