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상권 전쟁' 다윗의 반격 시작됐다

'골목상권 전쟁' 다윗의 반격 시작됐다

  • 승인 2009-11-26 10:07
  • 신문게재 2009-07-27 10면
  • 이종섭 기자이종섭 기자
골목 상권을 둘러싼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거세지고 있다. 무분별하게 확산돼 오던 대기업의 기업형 슈퍼슈퍼마켓(SSM)이 최근 중소상인들의 반발에 부딪혀 개점을 유보하는 첫 사례가 나오면서 그 동안 속수무책이던 중소상인들이 본격적인 반격을 펼치는 양상이다.

지역에서도 소상공인과 시민단체 등이 합세해 대형 유통업체의 확산을 막고 골목상권을 지키기 위한 본격적인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 동네상권에 들어선SSM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매장.
▲ 동네상권에 들어선SSM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매장.
▲SSM 확산에 속수무책=그 동안 동네슈퍼 등 중소상인들은 SSM의 무분별한 확산과 골목 상권 진출 앞에 속수무책인 상황에 놓여 왔다.

이는 대기업들이 대형마트 영업에 대한 부정적 여론 확산과 각종 규제 및 시장 포화에 따라 골목상권 진출로 사업전략을 수정하면서 SSM을 급속도로 확장하기 시작한데 따른 것이다.

실제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전국 54개 SSM 주변의 슈퍼마켓과 정육점 등 226곳을 대상으로 현장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소상공인들은 SSM 입점 이후 일 평균 매출이 30% 이상 감소했다고 답하고 있으며, 향후 경영상황에 대해서도 87% 이상이 부정적인 답변을 내놨다.

이 조사에 따르면 SSM 주변의 소상공인 10명 중 4명은 앞으로 6개월을 버티기가 힘들 것을 내다보고 있으며, 3개월 이내 문을 닫을 가능성이 있다고 답한 경우도 24.1%에 달했다.

또 이들 중소상인들은 SSM의 덤핑판매 수준의 가격할인과 사은품 제공 등 과도한 호객행위, 무차별 전단지 배포를 통한 상권 잠식 등을 그 주된 이유로 꼽고 있다.

이에 앞서 SSM주변 소매업체 300곳을 대상으로 진행됐던 조사에서도 79%가 ‘SSM 입점 후 경기가 악화됐다’고 답한 바 있으며, SSM에 입점에 따른 대응 전략에 있어서는 68.3%가 ‘특별한 대응책이 없다’고 답한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잠자던 ‘사업조정신청제’=이러한 상황에서 일부 지역에서는 중소상인들이 SSM 개설에 반대해 천막농성을 벌이는가 하면 집단적으로 사업자등록증을 반납하는 등 거센 반발이 이어져 왔다. 그러나 상인들의 집단 반발과 규제 목소리에도 뚜렷한 법적 근거 없어 마땅한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지속돼 오던 SSM 관련 논란은 최근 인천지역에서 첫 사업조정신청 사례가 나오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홈플러스가 인천시 연수구에 개설 예정이던 익스프레스 매장에 대해 인천슈퍼마켓협동조합이 지난 16일 사업조정을 신청하고, 중소기업청이 매장 개설에 대한 ‘일시 정지’ 권고를 내리려던 상황에서 홈플러스 측이 개점 유보 입장을 밝히기에 이른 것이다.

인천 연수구의 사례는 중소상인들의 반발로 대기업의 SSM 사업에 제동이 걸린 첫 사례라는 점과 함께 그 동안 잠자고 있던 사업조정제를 활용해 SSM의 무분별한 확산을 제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제기됐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파장을 불어 올 전망이다. 실제 전국의 중소상인들은 이러한 결과에 크게 고무돼 저마다 사업조정 신청을 검토하는 등 본격적인 반격을 준비하는 분위기다.

▲ 26일 대전시 동구 하소동 대전 중소물류센터에서 열린 SSM마트 확산 저지 궐기대회 모습.
▲ 26일 대전시 동구 하소동 대전 중소물류센터에서 열린 SSM마트 확산 저지 궐기대회 모습.

사업조정 신청은 대기업이 중소기업 상권에 진출해 중소기업의 경영안정을 위협할 우려가 있는 경우 정부가 사실 조사와 심의를 거쳐 대기업의 사업 확장을 연기하거나 생산품목과 수량 등의 축소를 권고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제도로 이미 지난 1961년부터 시행이 돼 왔다. 그러나 지난 2006년까지는 중소기업만 담당할 수 있는 고유 업종이 법으로 지정돼 있어 제도의 활용이 극히 미미했으며, 기업형 SSM의 확장과 관련해서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해 잠자고 있는 제도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대기업의 SSM 확장과 관련해 이 제도의 활용 가능성이 알려지면서 인천지역에서 첫 사업조정 신청이 이뤄졌고,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 냄에 따라 전국적으로 사업조정 신청이 봇물을 이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실제 인천 연수구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옥련점에 대한 상인들의 반발과 사업조정에 따른 홈플러스의 개점 유보 결정이 알려진 이후 중소기업중앙회에는 인천과 청주 등에서 추가로 5건 정도의 사업조정 신청이 접수됐으며, 전국에서 이에 대한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지역 소상공인, 근본적 해결책 요구=그러나 사업조정신청제도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는 지적도 많다. 홈플러스에 이어 롯데슈퍼도 최근 수도권에 개설하려던 매장 3곳의 개설을 연기하기로 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유보 입장일 뿐 점포 확장을 멈추겠다는 것이 아닌 만큼 보다 근본적인 규제 수단이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실제로도 올해 SSM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신세계는 홈플러스의 옥련점 개설 유보 결정 직후에도 개설 예정 점포를 오픈했으며, 이후에도 점포 개설 계획을 변함없이 추진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홈플러스의 한 관계자도 “이번 결정은 일시 유보 일 뿐 중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향후 상인들과 협의를 통해 개설 시기 등을 조율 할 것”이라며 “지역 상인들과 보다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 가겠지만 사업 전략 자체를 수정하기는 힘들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사업조정 신청 여부를 계획 중인 대전지역 소상공인과 시민단체 사이에서도 이에 대해 다소 회의적인 견해가 존재한다. 대전경실련 관계자는 “향후 상인단체 등과 함께 사업조정 신청 여부를 검토하겠지만 인천 옥련점 사례도 결국 사업조정 절차에 따른 일시정지 권고를 피하기 위한 임시방편적 대응으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며 “대기업이 SSM 진출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하거나 근본적인 규제책이 마련될 때까지 갈등을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대전지역 시민단체 및 소상공인 단체들은 그동안 요구해 온 SSM 허가제 도입 등 관련법 통과를 촉구하며 대응 수위를 높여갈 계획이다. 대전슈퍼마켓협동조합과 대전경실련 등 38개 단체는 28일 홈플러스 탄방점 앞에서 ‘소상공인살리기 대전운동본부’ 출범식을 갖을 예정이며, 이 자리에서 SSM 허가제 도입과 카드 수수료 인하 등 소상공인을 살리기 위한 각종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한편 이후 지속적인 투쟁을 벌여나갈 예정이다. 이와 함께 이들 단체는 중구 대흥동에 개설 예정인 하나로마트에 대한 사업조정 신청과 함께 기존에 개설된 지역 내 SSM에 대한 사업조정 신청 가능성을 검토할 계획이다. /이종섭 기자 nom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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