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언복] 아무리 고치고 바꿔 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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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언복] 아무리 고치고 바꿔 본들

[목요세평] 표언복 목원대 교육대학원장

  • 승인 2009-11-26 10:07
  • 신문게재 2009-07-23 20면
  • 표언복 목원대 교육대학원장표언복 목원대 교육대학원장
선거만 치르고 나면 으레 투표에선 이기고 개표에서 졌다는 말이 유행처럼 떠돌던 시절이 있었다 관권에 의한 부정선거가 예사롭던 시절의 얘기다 그런데 민주주의의 첨병임을 자처하는 미국에서 실제로 이러한 일이 있었다 오래 전 옛날 이야기가 아니다 10년도 안된 지난 2000년의 대통령 선거 얘기다 당시 민주당 후보로 나선 앨 고어는 공화당 후보 조지 부시와의 대결에서 유권자들로부터는 더 많은 표를 얻고도 선거인단 수에서 뒤져 대통령직을 얻는데 실패한 것이다 선거가 끝난 뒤 선거제도가 다시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는 듯 했지만 곧 찻잔 속 풍랑이 되고 말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 때 만약 한국이었다면하는 가상을 해 보며 그들의 선진 정치문화를 선망했다 미국민의 분열과 그로 인한 상처를 더 염려하던 패자 앨 고어의 처신은 또 얼마나 위대하던가 나같은 문외한이 생각해도 불합리하기 짝이 없는 미국 대통령 선거제도는 여전히 요지부동 좀체로 바뀔 것 같지 않으니 더욱 이상한 일 아닌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떠오르던 개헌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대치국면의 정치권은 일단 시큰둥한 반응이라지만 지난 어느 때보다 실현 가능성은 높아 보이는 상황이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고 법 또한 영원불변의 것일 수는 없는 것이니 시대정신의 변화에 맞춰 적당히 바꾸는 일이 크게 잘못된 것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긴 하지만 무려 아홉 번이나 허물고 기워 온 60년 남짓한 헌정사에 또 다시 열 번째 개헌 논의가 일고 있으니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우선은 너무 심한 것 아닌가싶은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는 게 사실이다 평균 6년에 한 번 꼴로 되풀이해 온 잦은 개헌이 밥술이나 먹고 산다는 나라에 우리 말고 또 있을까 싶기도 하다

5년 단임의 대통령 중심제를 골간으로 하는 현행 헌법은 체육관 선거를 거부하고 숱한 희생을 치르며 싸워 얻어 낸 값진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서로 먼저 대통령 될 욕심에 마음 급했던 3김을 포함한 당시 정치지도자들의 야합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러니 꼭 빌려 입은 옷처럼 낯설고 어색하여 언젠가는 반드시 바꿔 입자는 말 나올 줄 알면서도 여론 살피며 저 먼저 입 밖에 내기는 주저해 온 일이기도 하다 이러한 터에 이왕 공론의 마당에 나왔으니 더 이상 주저할 것 없이 진지하게 논의하여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일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없지 않다

그러나 사실은 열 번 백 번 고치고 바꿔봐야 이대로는 그 나물에 그 밥 결코 대수로울 게 없다는 회의가 먼저다 좋은 법을 만드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 법을 아끼고 존중하는 마음은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법은 어디까지나 사람에 의해 만들어져 사람에 의해 운용되는 것 제 아무리 좋은 법이라 할지라도 지켜야 할 사람이 지키지 않고 존중해야 할 사람이 존중해 주지 않는다면 그 법은 아무런 쓸모도 없는 무용지물에 지나지 않는다 법이란 어차피 누구에게나 다소간 불편할 수 밖에 없는 제도다 서로 다른 욕망구조를 지닌 사람들이 함께 조화를 이루어 살아가자니 불가피하게 만들어 낸 최소한의 통제장치인 때문이다 개인이나 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식의 것이 된다면 법은 설 자리가 없고 존재 가치를 잃을 수 밖에 없다

유권자가 행사한 표의 가치가 얼마든지 아무 것도 아닌 게 될 수도 있는 우스운 선거제도를 200년 넘게 고집하고 있는 미국인들의 생각은 도대체 무엇일까 바로 이것이다 법이란 함께 존중하고 지키고자 할 때 비로소 법다울 수 있다는 것 이해관계에 따라 멋대로 능멸하고 유린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말이다 거기엔 맨 처음 그 법을 만들어 낸 선조들의 정신을 존중하고 받드는 마음이 배어 있기도 하다 바로 이 마음 이 정신 없이는 우리 헌법 아무리 고치고 바꿔 봐도 별스러울 수 없다 온갖 불법과 무법이 난무하는 오늘의 현실을 보며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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