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철도 부설과 함께 보급된 전기대전에 전기시설이 들어선 것은 철도가 놓이고 대전역이 생기는 시기와 일치한다 1910년대 중엽 우리나라는 주요도시에서 전기사업이 시작되고 있을 때 대전도 철도와 함께 전기사업의 기운이 일기 시작했다
당시까지 전국에 전기를 생산하고 보급하는 업체는 서울의 한미전기회사와 부산의 부산전등(주) 그리고 인천의 인천전기(주) 등 3개 업체였다 전기가 사용되는 지역도 전국적으로 3곳밖에 없었다
대전지역은 일본인이 세운 대전전기(주)와 삼남전기(주)가 생기면서 전기가 공급되기 시작했다
충남전기 90년사에 따르면 대전전기(주)는 1911년 5월 5일 자본금 8만 원으로 창립해 사무소급 작은 발전소를 현재 인동(861)에 마련했고 1912년 1월 1일 지역에서 첫 전기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대전전기(주)의 영업개시 초기에는 대전시내 전등수용가 수가 134가구 점등수 557등(1911년 하반기 말)이었다 1912년 상반기에는 278가구에 점등수 1024등으로 늘어났다
당시 공급지역은 대전역을 비롯해 주택가와 상가가 밀집한 대전면(대전리 수침리 대여리 목척리) 571㎢일원 대전전기(주)는 당초 대전시가지와 대전근교 전기공급을 목적으로 영업을 개시했으나 해가 거듭할수록 전력공급구역은 광범위하게 증가했다
1937년 3월에는 대전본점 관내와 청주지점 조치원지점 충주지점 원주지점 공주영업소 관내를 공급구역으로 했다 이후 지역마다 전력회사가 우후죽순처럼 들어서 1940년대에 충남지역에만 5개 전기회사가 만들어졌다
이당시 전기회사는 개인이 하는 사업처럼 여겨져 전력회사를 차렸다가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도산하고 이를 다시 인수합병하는 일이 반복됐다 대전전기(주)도 인수통합과정을 통해 남선합동전기(주)를 거쳐 1961년 한국전력으로 통폐합됐다
▲전기요금 인상 국회의 동의까지 받던 시기1950년대까지 전기회사는 개인의 일반사업이었지만 공익사업인만큼 요금책정때는 정부의 허락을 받는 인허제였다 회사에서 요구하는 요금으로 인상하면 일반물가지수가 급등할지 모른다는 우려에 국민경제가 어느 정도 안정된 이후로 미뤄지기 일쑤였다 따라서 적정요금의 책정은 요원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요금을 받아오다 설상가상으로 1960년 재정법상 전기요금은 국회의 동의까지 받아야 하게끔 돼 더욱 어려워졌다
전기요금을 조정하려면 새로운 법적수속을 밟아야 해 요금개정 문제는 국회의 동의가 끌날때까지 시차를 작게 잡아도 무려 1년이라는 차이가 생겼다
당시 충남지역의 전기회사들 역시 생산단가보다 턱없이 낮은 요금으로 경영난에 허덕이다가 현실에 부합한 요금책정을 추진할 몇 가지를 강력히 요구했다
발전량 책정시 무리한 책정으로 배전회사 수입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정확한 수요량을 측정할 것을 요청하고 전력생산 단가가 지역마다 다르므로 급지별 내지 회사별 요금으로 할 것을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당시 정부는 1857년 1월 1일자로 현행 요금제도의 개정을 보게 된다
▲전력수급상황의 급변 한국전력의 발족1948년 5월 14일 북한이 일방적으로 송전을 중단함으로써 이때부터 남한은 심각한 전력난을 겪게 됐다 이는 곧바로 대전충남지역에도 단전으로 이어졌다 당시는 전국의 발전설비 172만 2000kW 중 북한이 152만4000kW의 발전설비를 갖추고 있었다 남한은 고작 19만 8000kW로 전체의 115%에 불과했다
1961년 6월 국가재건최고회의는 전원개발의 촉진과 전기사업의 합리적 운영을 목적으로 한국전력(주)을 설립 운영하게 된다 전국에 산재한 전기회사를 통합하고 보다 안정적으로 전기를 공급하기 위한 정책의 하나였다
한전은 출범하자 전원개발사업을 추진했다 특히 부산화력 1호기가 가동된 1964년 4월 1일부터 대전충남지역에도 제한송전을 전면 해제했다 광복 이후 19년 만의 전력해방이었다 그러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사업의 활발한 진전과 한일 국교의 정상화 등으로 전력수요가 급속히 늘어나면서 1967년 6월부터 68년 8월까지 다시 제한송전이 시행됐다 한때 설비의 과잉현상을 빚었던 전력사정은 석유파동으로 급속히 악화되어 1973년 12월 11일부터 20일간 산업용 전력에 대한 제2차 제한이 실시됐다 그리고 다시 1974년 10월부터 1978년 말까지 4년 동안에는 공급전력의 부족 때문에 만성적인 제한송전이 있었다 전기 사용을 줄이기 위해 산업용 전력에 대한 부하조절과 공장별 지정휴일제를 시행하는 등 다각적인 조치가 취해지기도 했다
▲전력 사용량 증가대전과 충남지역의 전기를 공급하는 한전 충남지사의 자료가 남아있는 1990년부터 전력량을 보면 크게는 3년 사이 82% 사용량이 증가하는 등 현재까지 전력사용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1990년 854MW를 보이던 대전충남의 순간 최대수요전력은 1993년 1223MW 1996년 2226MW까지 폭등했고 2000년대에는 3181MW를 거쳐 현재는 6158MW까지 증가했다 최근에는 심야보일러의 보급으로 여름보다 겨울철에 순간소비전력이 더 높게 올라간다는게 한전 관계자의 설명이다 또 한국전력 충남지사의 올해 계약전력은 14만 4205MW로 꾸준히 늘고 있다
1990년대 들어선 정부의 서해안 개발에 따른 대규모 전력소비업체들이 서해안 지역에 속속 입주해 대전충남지역의 2000년도 수요전력은 1990년도와 비교해 37배나 급성장했다 또 대덕연구단지와 둔산신시가지 성장 그리고 고층아파트 건설 증가로 서비스산업용 전력이 383배나 급증했다 거리불밝히기운동에 따른 가로등 설치확대 등으로 공공용전력도 142배 성장했다 전력사용량이 급증함에따라 전압변동이 적고 더욱 양호한 전기를 공급할 수 있도록 220V 승압사업에 나선다
1971년 대전충남의 농어촌 신규고객을 대상으로 220V 공급을 개시한 이후 승압공사는 2005년도까지 진행돼 100% 완료했다
한국전력공단은 1976년말 한국전력주식회사법을 개정 정부가 지원을 확대하고 민간주식을 매입하면서 만들어졌다 1979년부터 1981년까지 한전의 민간주식 매입을 완료해 한국전력(주)은 1981년 말로 해산등기를 끝내고 1982년 1월 1일을 기해 한국전력공사로 발족했다
새로 발족한 한국전력공사는 특별법인 상법상의 규제를 배제하게 돼 재무구조 개선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 한편 1984년 3월 정부투자기관관리기본법과 그 시행령이 제정됨에 따라 한전은 경영조직을 의결기구와 집행기능으로 분리 책임경영단위를 확정했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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