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혜정 금산 진산중 교사 |
곡의 내용은 알지 못해도 클래식의 잔잔한 선율을 감상하고 있으면 마음이 평화로워 지고 메말라 가는 마음을 충분히 적셔준다 아직도 꿈틀대는 감성을 발견하는 기쁨을 맛보는 아침이다 차창 밖에서 새어 들어 오는 신선한 아침 공기 사이로 풀 내음이 가볍게 스며든다 나도 모르게 늘 내 하루를 함께하는 44명의 학생들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1학년 수진이는 며칠 동안 공부사랑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공부한 정수의 덧셈을 오늘은 제대로 잘 도와 줄 수 있어야 할 텐데 2학년 재균이는 어제 수학시간에 일차함수의 뜻에 대한 이해를 잘 하였는데 오늘은 갸우뚱거리지 않고 잘 해결할 수 있을까 그리고 3학년 애언이는 어제 감기몸살로 아파서 등교하지 못했는데 오늘은 나았을까 또 오늘 꼭 해결해야 할 공문 처리는 등을 생각 하다보면 어느새 교문 앞에 도착한다
교실 밖을 내다보고 있던 학생들이 반갑게 안녕하세요라는 아침인사를 한다 어느 새 발걸음이 바빠진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인데도 늘 새로운 떨림을 주는 것은 이들과 함께하는 하루하루가 내 삶의 대부분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웃고 우는 일상에서 깊어지는 나이테의 굵기가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밝고 새침한 어느 땐 우직한 목소리가 뒤섞여 서로의 문안과 어제 내 준 숙제 오늘의 할 일들을 묻고 답해주는 소리들이 함께 들려온다 서로를 챙겨주고 도와주고 장난도 치고 깔깔깔 웃는 웃음소리도 들린다 높이 곧게 뻗어 하늘 높이 솟아오른 가문비나무에선 장단 맞춰 지저대는 새소리가 상쾌한 아침 분위기를 더해 준다
매일 이렇게 행복한 아침을 맞는다 1교시 기분 좋은 수업 시간이 시작된다 교사가 행복해야 학생이 행복하다고 누가 그랬던가? 오늘도 난 이 말이 참 명제임을 실감 하면서 신나게 수업을 한다
24년 전의 교단교사로 출발했을 때부터 가슴 깊이 다졌던 내 교육 신념 수학을 명쾌하고 즐겁게 가르치는 수학교사로 학생들에게 기억되고 싶은 그 각오를 흔들리지 않게 해주는 학생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그것은 바로 우리 학생들의 학습 수준과 생활태도 특성들을 고려한 수업일 것이다
자연 친화적인 학생들의 순수함과 서로를 배려하고 무엇인가를 함께 나누려 하며 서로 돌봐 주고 잘못하면 안타까워하는 인간미 넘치는 그 모습이 결국 교사로서의 나의 힘의 원천이다 난 오늘도 감사할 뿐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우리 57명의 가족은 물론 지역 주민 동창들에게 걱정거리가 생기게 되었다.
도시로 인구가 집중되면서 농산어촌은 학생들은 고사하고 청년층 조차 찾아 보기 어려운 상황이 돼 버렸다. 학생들이 계속해서 줄어들면서 일부 남아 있는 학생들은 친구 사귀기도 쉽지 않다
충남의 경우 농산어촌이 많은 지역적 특성을 갖고 있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학생들이 지속적으로 줄어들면서 도내 상당수 학교가 통폐합 되거나 폐교되는 위기를 겪고 있다.
우리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학생들이 얼마 되지 않아 폐교의 위기를 맞고 있다.
죽음을 며칠 앞 둔 시한부 인생을 사는 환자처럼 하루하루를 연명해 나가는 시골 농촌 소규모 학교인 셈이다. 하지만 학교가 남아 있는 동안 만이라도 천진난만한 시골 학생들에게 행복한 미래를 선사하고 싶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