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소년의 가슴 깊은 곳...조선의 피가 끓고 있었구나

아! 소년의 가슴 깊은 곳...조선의 피가 끓고 있었구나

안영진 前주필의 일본 도요산책

  • 승인 2009-11-26 10:07
  • 신문게재 2009-07-21 12면
8. 도공들 西南전쟁에 참전

14대 수관이 중학교에 입학하던 날, 교실에 상급생 몇 놈이 들어오더니 “이 반에 조선 놈이 있지, 손들어!”하고 소란을 떨었다. 심 소년이 손을 들지 않은 것은 자신이 조선 사람이라는 걸 꿈에도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가 졸업한 소학교는 모두 마을 사람들 자제들로 교육 또한 일본의 여느 소학교와 다를 바가 없었다.

‘나에시로가와’ 소학교는 학생들 평균 성적은 현(縣)에서 가장 뛰어났고 선생들도 ‘학교는 작지만 우리학교는 일본서 제일가는 소학교’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쳤다. 이들은 평민이 아닌 사족(士族)의 자녀들이었고 2차 대전 종료까지 그들은 ‘나에시로가와’ 출신이라는 걸 되레 자랑으로 삼고 있었다.

말이 나온 김에 한 마디 덧붙이자면 구막(舊幕)에서 명치유신 때까지 ‘나에시로가와’ 향사(鄕士)들은 ‘사?군(薩州軍)’에 편입, 관군(官軍) ‘나에시로가와’ 소대에 편입, 무진전쟁(戊辰戰爭:親幕派와 幕對派의 싸움(1860))에 종군, 동북지방까지 나가 싸웠다.

차도룡(車道龍), 이원각(李元覺), 박일남(朴一男), 정참석(鄭參石), 신태순(伸泰淳), 김정룡(金正龍), 이정선(李正仙) 등이 그 대원었이다. 명치 10년, ‘사이고오(西鄕薩盛)’가 사족(士族)의 자제를 인솔, 소위 서남전쟁(西南戰爭)을 일으켰을 때도 몇몇 젊은이가 참전했고 박용금(朴龍金)이라는 청년도 그 중의 하나였다.

이렇듯 ‘나에시로가와’는 너무나도 일본적인 마을이었다. 그러니 심 소년이 손을 들지 않은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도공들을 옹호하고 대우하던 ‘사츠마’ 번은 이미 먼 과거로 사라져 버렸다.

명치 이후의 정부는 그들을 단순히 일본인으로 취급했다. 다만 성씨(姓氏)와 혈통만 세상의 이목을 끌었다. ‘가고지마’에서 ‘나에시로가와’를 아는 사람은 차차 줄어들었다. 교실에 들어온 윗반 애들은 그것을 알 까닭이 없었고 다만 신입생 명부에 한인 성이 있는 것을 알았을 뿐이다.

심 소년이 잠자코 있자 상급생들은 몹시 화를 냈다. 정신 상태를 고쳐준다고 설쳐댔다. 그들은 심 소년을 교실 밖으로 끌어내어 옥상으로 데려갔다. 열 놈쯤이 덤벼들어 때렸다. 심 소년은 정신이 가물가물했으나 이를 악물고 울지 않았다.

일본인은 강하기 때문에 울면 일본인이 안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이렇게 얻어맞다보니 보면 자기 성이나 가계(家系)가 그런 것처럼 어쩌면 일본인이 아닌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렴풋이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자빠지며 뒤통수를 바닥에 부딪쳤다.

그리고 정신을 잃었다. 오늘 처음 입고 온 교복은 코피 투성이가 되어버렸다. 이윽고 심소년은 혼자 깨어났다. 교실로 내려와 가방을 들고 학교 문을 나섰다. 기차는 구시끼노를 지나 ‘히가시이찌끼(東市來)’ 역에서 내린다. 마을까지는 2km 남짓이다.



네 몸엔 조선 피가 흐른다

이 길은 소년의 선조가 서해안에서 주민들 박해에 못 이겨 오두막을 버리고 정처 없이 동쪽을 향해 걸어갔던 그 길이다. 소년은 후일 장성한 뒤에야 그것을 알았다. 집 가까이 이르자 소년은 깜짝 놀랐다. 검은 사철나무 울타리 저쪽 대문 앞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 있지 않은가.

소년에게 부모는 기막힌 예견자(豫見者)였다. 오늘 있었던 사건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평소 그다지도 엄격했던 아버지는 아들의 어깨에 손을 얹고 흙을 털어주며 감싸듯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소년은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가 얼굴 상처에 약을 발라 주려고 했으나 소년은 흐느끼며 눈물을 흘렸다. 소년은 혼자 우물가에 가서 얼굴을 씻었다. 눈물을 멈추고 싶었다. 아버지가 등 뒤에 따라와 소년에게 수건을 주었다. 소년은 부친의 물음에 오늘 일을 모두 얘기했다.

얘기를 하며 또 눈물을 흘렸다. 소년은 다시 얼굴을 씻었다. 아버지는 “그럴 테지! 그럴 테지!”하면서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부친은 원래 말이 없는 사람이라 아들에게 말을 하지 않았으나 그 자신도 아들의 경우처럼 ‘가고지마’ 중학에 입학하던 날 같은 일을 당했던 것을 비쳤다.

부친은 그래서 이날을 걱정했고 아내에게도 이야기해서 둘이서 아들이 돌아오기를 문 앞까지 나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부친의 그 예감은 가혹하리만큼 적중했다. 소년은 결심했다. 이제 그 따위 학교는 가지 않겠다.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배우면 되지 않느냐고 떼를 썼다.

그러자 부친은 12대 심수관씨가 자신에게 했듯이 똑같은 말을 심 소년에게 했다. “그 따위 근성은 개나 주어라. 싸워서 이겨야 한다. 네 핏줄에는 조선 귀족의 피가 흐르고 있다. 들어보겠니? 하면서 아들에게 자신의 가문과 혈통을 이야기했다.

전라도 남원성의 싸움, ‘사츠마’ 반도에 상륙한 후의 고생, 그때 ‘시마즈’공이 크게 동정 “가고지마로 나오라! 나오면 집을 주고 보호도 해준다.”고 했다. 그때 선조들은 남원성의 배신자 주가전과 함께 사는 것은 의(義)가 아니라며 임금을 배반한 자와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싶지 않다고 거절한 일을 설명했다.

‘시마즈’ 영주의 말은 곧 법이라 거역하는 자는 죽음을 각오해야 했지만 선조들은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런 용기는 누구나 갖는 것은 안다! 네 혈관 속엔 그때의 그 용감한 피가 흐르고 있다. 아버지의 말이 끝나자 소년은 일어서 나가려고 했다. 아버지의 말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때 “기다려!”하고 부친이 제지했다. 이 13대 수관은 일터에서도 그랬지만 기다리라 했을 때 상대가 동작을 멈추지 않으면 크게 화를 냈다. 소년은 발을 떼던 그 자세로 정지했다. “첫째를 하라! 첫째를 할 밖에 없다. 싸움에서도 첫째, 공부도 첫째, 그러면 사람들 보는 눈이 달라진다. 위축되면 상대는 더욱 기승을 부린다. 튕기는 거다. 그밖에 다른 도리는 없다.”

아버지는 그렇게 말했다. 소년은 이날부터 일기를 적기 시작했다.



沈소년의 눈물겨운 일기

그 일기는 지금 읽어보아도 매섭도록 서릿발 치는 것이라고 했다. 중학 입학 때부터 3학년까지 매일매일 한 가지 주제로 엮어진 일기장이다. 일본인이란 무엇이냐? 하는 물음에서부터 부친이 말하듯이 자신에게 조선인을 이기는 일밖에 이 세상에서 살아갈 길이 없다고 생각했다.

선생은 매일 같이 일본인을 찬미했다. 우선 일본인은 명예심이 강하다고 했다. 수치를 아는 민족이라 했다. 그러나 교실에서 남의 답안지를 훔쳐보는 아이들을 볼 때 이것이 과연 명예심이 강한 국민성인가 싶었다. 의(義)를 보고 물러나지 않는다 했지만 과연 약한 자를 돕고 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용감한 국민성이라면서 세계 어느 민족보다 강한 피가 흐르고 있다고 선생은 말한다. 그렇다면 일본인의 피를 안 가진 소년이 설 자리는 없지 않은가. 이 때문에 소년은 한 사람 한 사람씩 일본학생과 싸워 이겨야 했다. 세다고 소문난 놈이면 다른 반 아이에게까지 도전했다.

‘사츠마’소년들은 마주 서서 약간 바른쪽 어깨를 추스르는 그 포즈만으로 도전하는 뜻이 되고 도전당하면 뒤로 물러서지 못한다는 불문율이 있다. 이것이 심 소년의 탐구(探究) 과제였다. 매일 같이 학교 뒤 공터에서 싸움을 벌였다. 때로는 힘겨운 상대도 있었지만 그럴 때 소년은 죽으라고 자신에게 명령했다.

뼈가 부러지는 한이 있어도 싸움을 멈출수는 없다. 상대를 때려눕히고 자신이 이겼다고 생각하는 순간까지…. 어쩌면 심 소년은 일본인 피가 솟구쳐서 자기가 튕겨져 넘어지지나 않을까 하고 갑자기 기분이 야릇해지기도 했다. 피에 대한 신앙은 오히려 심 소년 쪽에 있었다.

드디어 이 탐구는 중학 3학년 때 비로소 완성을 보았다. 소년은 이 세상 어느 진리보다 멋진 진리를 터득했노라 싶었다. 그는 슬기로운 자질(資質)과 명랑한 성격을 조부와 부친에게서 물려받았다. 자신이야 말로 가장 훌륭한 일본인이라는 결론에 보탬이 된 셈이다.

“바닷가에 하시마(羽島)라는 섬이 있죠?” 침울한 화제를 싫어하는 심수관씨는 화제를 돌렸다. ‘구시끼노’ 어항에서 해변가로 20리쯤 북으로 가면 북쪽으로 길게 뻗어나간 어항이 있는데 그곳이 ‘하시마’다.



‘하시마’ 산 속에 옛 가마터

“거기에 도오진마츠(唐人松)라는 소나무가 있어요.” 최근 그 ‘하시마’ 산 속에서 오래된 가마터를 어느 학교선생이 발견했다고 한다. 심씨가 답사해본 결과 ‘나에시로가와’식의 오래된 가마인데 왜 이런 외딴 곳에 옛 가마가 단 하나만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조사원의 추측으로는 아마도 ‘시마비라(島平)에 상륙한 일행 중 한 사람이 고향이 그리운 나머지 일행과 헤어져 돌아갈 생각으로 바닷가를 헤매다 여기에 정착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 사람은 측은하게도 바닷줄기만 따라가면 고향에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20리쯤 걸어가다 허기져 쓰러졌다(조사원 상상이지만). 마을 사람들의 호의로 거기에 살게 됐고 그러다 혼자서 그릇을 굽다 그 사람의 죽음과 함께 가마의 불도 끊겼으리라. 그 지방 ‘간누시(神官)’의 상상력은 한발 더 비약한다.

그의 예단으론 그 도공은 마을 소녀의 친절에 감동, 서로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망향의 정을 끊을 길 없어 드디어 소녀와 가마를 버리고 어느 달 밝은 밤, 나룻배를 저어 바다로 나간 채 소식이 끊어진다. 이에 소녀는 ‘도오진마츠’ 밑에서 슬피 운다.

“어떻습니까? 이 비련(悲戀) 스토리는 성립이 안 될까요? 이런 전설을 만들어 세상에 퍼뜨리면 이 외딴 곳도 좋은 관광지가 될 텐데요.”하고 신관을 열을 올렸지만 심씨가 산에 올라 가마자리를 파헤치고 도기(陶器) 조각을 살펴본 결과 그릇의 두께로 보나 구워진 모습으로 보아 그런 비련의 주인공이 될 만한 젊은이 솜씨가 아니라 상당히 노숙(老熟)한 인물로 추측되더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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