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과학연구원장을 역임해 정부출연연구기관 설립 30년 역사 이래 최초의 여성기관장 기록을 갖고 있는 정광화 충남대 분석과학기술대학원 원장은 박정희 정부 시절 해외에서 유학을 마친 유명한 과학자들을 국내에 영입하고자 도입된 유치과학자 제도에 의해 국내 여성 유치과학기술자 1호를 기록한 국내의 대표적인 여성과학자다. 역대 대통령들의 과학기술 자문역할을 해내며 지난해에는 2008년 올해의 여성과학자상을 수상하기도 한 정광화 원장으로부터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들을 들어보았다.
-편집자 주-
▲우선 시대가 만들어줬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어린 시절부터 물리와 수학을 좋아했는데요.과학자의 사고는 일반인과는 약간 다릅니다. 예를 들면 일반 사람들은 무심코 보아넘기는 피아노를 보고 과학자들은 ‘저 피아노가 왜 소리가 날까. 근본 원인은 뭔가, 저 밑바닥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하고 근본을 따지게 됩니다. 별을 봐도 예쁘다고 생각하기보다 물리학자는 ’왜 빛나는지, 지구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을지, 조화의 근본 원인은 무엇인지’ 우주를 꿰뚫는 하나의 원리를 생각합니다. 조화를 추구하다보니 절제된 예술인 발레와 클래식도 좋아하게 됐습니다. 무질서 속에서 조화와 질서를 찾고 움직이는 법칙을 찾는 것을 좋아합니다. 리더십이란 게 사람에 따라 카리스마로 통솔하는 능력을 생각하기도 하지만 저에겐 그런 리더십은 없습니다. 다만 항상 기관이나 조직을 이끌어나갈 때 어떠한 방향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주위의 협조를 구합니다.
-요즘 노동법 관련해서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데 이에 대한 원장님 의견은 어떠신지요.
▲비정규직 문제에 있어서 우리나라 직업구조는 왜곡돼 있습니다. 과학자들의 취업이 많이 돼야 하는데 연구기관 아니면 대학으로만 집중돼 있습니다. 대기업만 선호하죠. 중소기업이나 벤처로는 안 가는 게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우리나라는 이공계 인력을 선진국보다 많이 배출하는데도 생산인력이 부족합니다. 고급 인력이 학교와 출연연구소, 대기업에 집중되다보니 비정규직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대덕단지 벤처산업도 희망을 갖고 가면 좋은데 벤처들이 소프트웨어에 머물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반면 출연기관은 가장 우수한 인력을 유치해야 되고 과학 기술 인력은 계속 새로운 피로 바뀌어야 됩니다. 선진 외국과 대학은 연구 인력이 비정규직인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출연연 연구기관들도 계속해서 새로운 피로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선진국에서도 좋은 연구소들은 ‘포스트닥’,‘비지트닥’ 등 외부 계약직이 거의 50% 이상을 차지합니다. 5년 계약, 10년 계약 등을 맺죠. 좋은 연구소를 유지하는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수인력을 계속 보유할 수 있는 장점이 있죠. 노동시장, 생산시장과 똑같이 생각하면 안 됩니다. 물론 종신교수제처럼 연구자도 퍼머넌트한 직업을 잡을 필요는 있죠. 어떻게 균형을 맞추느냐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원장님, 여학생들은 대부분 수학이나 물리를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원장님은 경기여고와 서울대 물리학과, 미국 피츠버그대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으실 정도로 어릴때부터 수학과 과학의 영재셨던 것 같습니다. 지능지수도 영향을 미칠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수학을 잘할까요.
▲IQ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얼마나 열심히 진돗개처럼 물고 늘어지고 파고 드느냐에 따라 능력의 차이를 보이는 것이지요.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노는 것도 집중해서 놉니다. 운동도 그렇고 학교공부도 그렇고 집중이 중요하죠. 사람들은 흔히 머리가 좋으면 공부를 잘한다고 하지만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요령을 안피우고 꼬박꼬박 하기 때문에 잘하는 겁니다. 수학이나 과학, 물리 학문은 특히 그렇지요. 피아노 치는 것과도 비교할 수 있습니다. 머리속으로 외우는 다른 과목들과 달리 수학과 과학은 피아노 치는 것처럼 내 손으로 직접 해야 되는 과목이지요. 수학, 과학을 잘하는 사람은 근성이 있습니다. 천재는 있을 수 있지만 어느 누구라도 연습하면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난 수학을 못해’ 하고 포기하는데 그러면 안 됩니다. 수학 선생님이나 부모들도 아이에게 잘못한다고 타박을 줘서는 안 됩니다. 처음부터 아주 쉬운 문제로 시작해 많은 연습을 거치면서 단계적으로 차근차근 올라가다보면 깨우치게 됩니다. 일제시대때 일본사람들이 수리를 중시하는 교육을 하는 것을 보고, 또 전쟁때 과학 브레인이 중요하다는 것을 아신 부모님은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깨닫고 수리를 잘하는 사람이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셨습니다. 제가 수학을 잘하니까 어머니께서 아주 기뻐하셨지요. 수학은 아주 쉬운 문제부터 차근차근 풀면서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잘 이해가 안가고 모르겠으면 선생님 말씀을 토씨 하나까지 받아 적고 무조건 외우는 방법도 있습니다. 수학은 무조건 많이 풀어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공부는 노력하는 이외엔 다른 도리와 방법이 없습니다. 요령도 일단 열심히 하는 바탕위에 있는 것이죠. 수학은 당연히 잘해야 되는 과목이기 때문에 포기하지 말고 열정을 다해 공부하기를 권합니다.
-원장님 부군은 국방과학연구소의 핵심연구인력으로 2002년 국방과학연구소 최초로 ADD상을 수상하신 미사일 전문 연구가 정규수 박사님이시고, ‘연인의 잔’을 발명해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은 따님 정혜민양도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졸업에 이어 미국 MIT에서 학위 마친 뒤 미국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과학자 집안이신데 따님의 교육은 어떻게 시키셨나요.
▲저희 집이 도룡동이다보니 딸이 대덕고를 다녔는데 사교육은 일절 안 시켰습니다. 딸아이는 밤 12시에 야간자율학습이 끝나고 집에 오면 새벽 1시부터 3시,4시까지 컴퓨터를 껴안고 살았습니다. 걱정이 돼서 물어보니 컴퓨터 게임의 즐거움을 누리는 재미로 살기 때문에 수업 시간에 선생님 말씀을 열심히 듣는다고 하더군요. 만약 컴퓨터게임을 못하게 하면 수업시간에 졸 것 같다고 해요. 그래서 그냥 믿고 맡겨놨죠. 저와 남편이 늘 바쁘다보니 아이에게 제대로 엄마 노릇을 못해준 것이 늘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는데 어릴 때부터 딸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쳐주셨던 선생님이 엄마 역할을 해주셨던 것 같습니다. 딸아이가 스트레스가 쌓이면 다 들어주고 놀아주고 다독거려주셨습니다. 엄마들에게 해드리고 싶은 말은 아이에게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도록 풀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힘들다는 말을 엄마나 아빠에게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엄마, 아빠는 무조건 부모가 생각하는 것만 강요하고 아이들의 심정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경향이 있어 대화가 단절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사교육이 어디가 좋다든지 하는 공부 이야기만 하고 아빠들도 자신의 직장 공부만 하지 제일 중요한 공부인 자기 자녀 공부에는 소홀한 경향이 있습니다. 자신의 자녀에 대한 연구와 공부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자녀에게 요구조건만 내걸지 말고 자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귀 기울여 받아들여줘야 합니다.
-여성과학인으로 살아오시면서 가장 큰 보람은 무엇인지요.
▲제가 표준과학연구원장으로 있을 때 우리나라 국가 표준을 확립해 시작부터 같이 하면서 세계적인 표준기관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기여했다는 점이 가장 큰 보람입니다. 진공기술센터를 만들어 새로운 원리를 개발하고 국가 표준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힘썼는데 척박한 과학계에서 걸음마작업을 거쳐 오늘에 이른 것이 뿌듯하게 느껴집니다. 황무지 같은 환경을 옥토로 만드는데 오세화 박사와 함께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78년도에 미국에서 돌아와 대전에 정착할 때 여성과학기술인의 참여도가 적었는데 점차적으로 여성과학인들의 활동과 참여도가 높아지고 있어 흐뭇합니다. 서로 간 네트워크를 긴밀히 구축하면서 지도력과 리더십을 쌓고 연구에 매진하면서 제자들을 키워내는 삶이 보람으로 다가옵니다.
-원장님의 인생관과 비전이 궁금합니다.
▲제가 천주교 신자인데요. 예수님께서 ‘작은 일에 충성하라’고 하셨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그때그때 그 일에 충실하려고 노력하죠. 제가 원장 일을 맡고 있는 분석과학기술대학원은 교육부와 과기부와의 합체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내는 곳입니다. 새로운 것에 매력을 느껴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분석대학원 일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분석대학원이 일류대학원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저희 분석대학원은 생물, 화학, 물리, 화공, 금속, 재료, 공학, 해양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좋은 학생들이 많이 옵니다. 지역 학생들을 훌륭한 인재로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전망과 도전의식, 자질을 보유한 학생들을 세계적인 인재로 키워볼 생각입니다. / 대담. 정리=한성일기자
정광화 원장은 ?
▲48년 광주 출생 ▲경기여고, 서울대 물리학과. 미국 피츠버그대 물리학박사 ▲2008년 올해의 여성과학기술자상, 국민훈장 목련장. 이달의 과학기술자상 등 수상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 ▲충남대 분석과학기술대학원장 ▲아시아태평양측정표준협력기구(APMP)의장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 3.4대 회장 ▲한국진공학회 회장 ▲한국계량측정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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