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병철 작가 |
맨 처음 그를 만난 것은 88년 브라운관 속 청문회 스타 시절이다. 그는 투박한 외모 속의 거품없는 문장으로 아주 노련한 조련사가 되어 한 시대 실력자들에게 포충망을 던졌다. 그는 확실히 스타였다. 양다리 솜망치 따위야 차치하고라도, 몇몇 날카로운 금배지들과도 확실히 다르게 젊은 그는 단연코 빛났다. 하지만 곧바로 고난의 길이 시작되었다. 힘과 논리의 사내가 부산시장과 그 지역구 국회의원 출마에 번번히 고배를 마시면서 기우뚱했다. 사람들의 가슴도 뻥 뚫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편의 드라마로 그는 오뚝이처럼 십여 년 뒤에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었다. 그 자리에 서자마자 우선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그는 소통을 시도했다. 시장 상인이든 평검사들이든 신문밖에 안 보는 보수파든 남북정상회담이든, 그는 ‘벽을 뚫는 창’이 되려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대통령이 된 그가 권위의 옥좌 그 베일 홀라당 걷어낸 순간부터 슬슬 무대에 오르더니, 언제부터였나, 옆구리를 찌르기 시작했다. 그 사내 그냥 허허 너털웃음으로 지나치자 활자판들이 갑자기 손톱을 세우며 태도를 바꾸었다. 야만의 먹물 펜촉들, 킬링휠드 연발 탄피 토하며 여린 속살 골라 뜯었다. 말투와 걸음걸이와 가방끈까지 닥치는대로 발목을 걸었다. 가끔 그가 실제로 넘어지기도 했다.
삽시간에 강산의 절반이 바뀌었고 그가 퇴역의 사내 되어 농군의 형상으로 배회했다. 자전거에 손녀딸을 태우고 페달을 밟거나 점방에 앉아 담배를 물기도 했다. 그런데 여기까지 따라와 발목을 잡는 것이다. 그 복합적 스토커 행위에 이른바 그의 우군 부류까지 가세해서 그에게 표창을 겨누었다. 물론 그도 가끔 자신의 입장에서 방어를 했다. 던지는 문장마다 시가 되고 꽃이 되었지만 그를 향한 손가락질은 멈추지 않았다. 그쯤해서 매듭을 풀었어야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가 돌부리를 차건 기지개를 켜든 닥치는 대로 셔터를 누르고 상처를 쑤셔대는 난리 부르스의 연출이었다. 너무 아파 울지도 못했다. 마침내 그도 외로움에 사무치기 시작했다.
하여, 그니의 맨살 바위 모서리에 닿는 찰나 온 세상 늪 같은 고요에 빠져버렸다. 사람들은 판단을 멈추고 울멍울멍 몰려오기 시작했다. 헤어지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은 그제서야 유채꽃 노란 대궁으로 껴안아달라는 마지막 유언 스르륵스르륵 숙성시키는 중이다. 긴 세월 함께 동지로 떠올리던 벗들, 그리고 처음부터 마구잡이로 할퀴던 깨진 병조각들, 그 모두를 알몸의 온기로 사무치게 녹이려했던 사내. 아주 작은 비석 하나 품겠다던 그를 비로소 아프게 상기한다. 이제 그에 대한 평가는 의미가 없다. 그를 사랑했던 사람이나 미워했던 사람이나 그가 ‘저 푸른 자유의 하늘로 떠난 이 리얼한 현상 속에서 제발 입을 다물어야 한다.
그는 ’모난 돌‘이었다. 거친 세상 알몸으로 껴안고 날카로운 쇠붙이 수두룩 받아내더니 기어코 ’모난 돌‘답게 그가 먼저 떠났다. 그렇게 ’먹‘하니 어금니 깨물다가 샛강 건너 물푸레나무 초승달로 걸려있는 그니를 보았다. 느이들은 지금 살아있다고 그 표정이냐며 킬킬킬 가쟁이 흔들어대는 주름진 너털 웃음 분명히 보았다. 망부석으로 남아있던 그 나라 백성들 무더기로 손등 찍으며 황혼을 토해내는 풍경도 보았다. 아프다. 그러나 울지 말아야 한다. 다시 점방에서 소주 한 병을 꺼내니 황혼이 지나고 썩은 새 깥은 어둠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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