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항읍 원수리 주민 성일례(여. 76)씨는 하구둑 얘기가 나오자 손사례부터 치며 나지막히 말을 잇는다. 그가 이 곳에 터를 잡고 살아 온지도 벌써 40여 년. 한때 이곳 주민들은 대부분 마을 바로 앞 바다와 갯벌에 의존해 삶을 영위해 왔다.
성씨 역시 풍족하진 않았지만 갯벌에서 나는 조개며 굴을 캐 자식들을 키웠고, 마을 사람들 중에는 꾀 큰 배를 부리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고 전한다.
그러나 다 옛날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하구둑이 생기면서 마을 사람들은 삶의 터전을 잃었고 생계를 위해 하나 둘씩 짐을 싸 떠났다. 그의 말마따나 갈 곳 없는 노인들만 남게 된 것이다.
▲멈춰선 고깃배는 물길을 잃고...기능 잃은 항구, 황폐화된 어장
지난 15일 금강하구둑을 지나 장항으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만난 한 바닷가 마을의 풍경은 장맛비가 잠시 멈춰선 어두운 하늘만큼이나 을씨년스러움을 자아내고 있었다. 외줄에 묶인 채 ‘뻘’ 위에 정박된 고깃배 몇 척만이 활력을 잃어버린 바닷가 마을의 옛 영화를 추억하고 있을 뿐이다.
방파제 위에 서 깊은 시름에 잠긴 듯 먼발치의 하구둑을 바라보던 한 노부(老夫)는 어렵게 오래 전 기억을 더듬어내 듯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옛날에는 (고기가)겁나게 많았지. 투망 던져 건져 올리기도 하고, 꼬막도 줍고. 이게 저기 부여까지 올라가던 물인데 올라가질 못하니 뻘만 생기고. 바다는 다 죽었어. 고기도 안 들어오고, 저기 배들도 맨날 묶여만 있지 생전 나가는 것 못 봤으니께...”
마을을 돌아나와 얼마 지나지 않아 다다른 장항항의 모습도 활기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물양장(소형선박이 접안하는 부두)을 드나드는 배도, 어판장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도 많지 않아 보였다. 이곳에서 만난 한 어민은 “1년 내내 바다에 몇 번 나가보지고 못하고 세워두기만 하는 배들이 수두룩 한데 어판이라고 제대로 형성 되겠냐”고 말했다.
장항항은 한때 국제항으로 기능하던 곳이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대표적인 쌀 수출항의 하나였으며, 1930년대 장항제련소가 들어서면서 더욱 활기를 띠기 시작해 1964년 국제항으로 승격, 얼마간의 부흥기를 맞기도 했다.
풍부한 어족 자원을 바탕으로 이뤄지던 활발한 수산활동과 물류 이동으로 장항은 물론 서천 경제를 떠 받치는 버팀목 역할을 해 오던 이곳이 본격적인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90년 금강하구둑이 완공되면서부터.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 천혜의 어장을 형성하던 이곳에 하구둑이 들어서면서 산란을 위해 강과 바다를 넘나들던 회귀성 어종들이 하나 둘 사라져 갔고, 항구에는 토사가 쌓여 그 기능을 점차 잃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서천군의 어업 종사자 수도 급격히 감소했고, 지역 경제를 떠 받치던 수산업 전체가 막대한 타격을 받았다. 서천군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 1990년 2018가구 8779명에 달하던 어가 및 어가인구는 지난 2005년 현재 1298가구 3567명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으며, 어업 종사자수도 같은 기간 4465명에서 2259명으로 반토막이 났다.
강과 바다가 하구둑에 완전히 가로막힌지 10여 년만의 결과다. 전두현 서천군어민회 부회장은 “금강의 물길과 서해바다가 만나는 장항 앞바다는 거의 모든 어종과 어패류가 서식한다고 할 정도로 어족 자원이 풍부한 곳이 었다”며 “어민들 입장에서는 삶과 어장을 파괴한 하구둑을 당장이라도 부숴 없애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쇠락한 항구 도시 장항
항구 가까이 자리한 장항도선장도 하구둑이 들어선 이후 이 지역의 변화를 웅변하고 있는 곳 중 하나다. 이 곳은 바로 하구둑이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군산과 장항을 이어주던 유일한 교통수단이 자리하고 있던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추억의 명물 정도로 전락해 낡은 사진 속 풍경처럼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이날도 제법 옛 정취가 묻어나는 대합실 한 켠에는 매점을 운영하는 중년 남성이 홀로이 자리하고 있을 뿐 좀처럼 사람의 발길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이 곳 도선장에서 장항역으로 이어지는 장항읍내의 풍경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시간이 멈춰선 듯 페인트 칠이 벗겨지고 비어있는 듯한 낮은 건물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고, 열차가 멈춰선 장항역과 굳게 문이 닫힌 역 앞의 한 다방은 영락없이 ‘쇠락한 도시’의 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꽤 오래전이지만 읍장을 지내면서 장항의 모습을 면밀히 들여다 본 적이 있어요. 하구둑으로 인해 어업이 붕괴되고, 어민들이 사는게 팍팍해지다보니 이 사람들 때문에 먹고 살던 술집이니 다방이니 다 망할 수 밖에 없죠. 한마디로 장항은 경제기반이 완전히 붕괴됐다고 봐야죠. 아마 국내에서 항구도시 중에 망한 곳은 장항이 유일할 겁니다.”
장항읍장을 지낸 바 있는 박종렬 서천군 재난안전관리과장의 말이다. 이 곳 주민들은 하구둑 때문에 장항이 죽었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하구둑은 장항 뿐 아니라 서천 경제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 하구둑으로 인해 이 곳 주민들의 생활권과 편의가 확대된 것도 분명한 사실이지만 서천의 경제는 건너편 군산 지역으로 빠르게 흡수돼 경제 유출과 빨대 현상을 가속화 시켰다. 바다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불꺼진 장항과 불야성을 이루는 군산의 밤이 더욱 대조를 이루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천 주민들은 단적으로 변변한 의료시설 하나 없어 군산까지 나가야하는 현실을 지적한다.
▲기대는 분노로...하구둑 20년, 서천경제 발목
사실 완공 전까지만 해도 서천 주민들은 하구둑이 지역 경제 발전을 가져올 것이라 기대했다. 이 무렵 장항에는 바다를 매립해 374만평 규모의 대형 국가산업단지를 조성한다는 계획이 함께 추진되고 있었고, 이 곳의 원활한 용수 공급을 위해 금강 하구를 막아 담수호를 만들어야 한다는 논리는 꽤나 설득력이 있었다. 어장 파괴를 우려하는 어민들의 반발이 있었지만, 주민들은 이러한 밑그림이 지역 경제에 장밋빛 미래를 선사해 줄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감은 오래 가지 못했다. 정부가 약속했던 장항산단 추진 계획은 시대적 패러다임의 변화와 함께 환경파괴 논란에 부딪혀 실현되지 못했고, 주민들의 기대감은 서서히 실망과 분노로 바뀌었다. 주민들에 따르면 하구둑 건설에 따라 어업보상금을 받은 일부 어민들 중에는 목돈을 손에 쥔 채 개발에 대한 기대감과 투기 바람에 휩쓸리다 패가망신한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결국 갯벌을 메워 공장을 세우겠다던 개발시대의 야심찬 프로젝트는 완성되지 못했다. 서천은 현재 바다와 바꿔 얻으려 했던 경제 발전의 토대를 모두 잃고, 새로운 발전 전략의 토대로 다시 강과 바다를 주목하고 있다. 흘러간 영화와 아픔의 기억에 집착하지 않고 천혜의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한 생태 관광 도시로 거듭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20년 가까운 세월 바다와 강을 가로 막고 선 금강하구둑은 이러한 계획에 여전히 발목을 잡고 서 있다. 썩고 죽은 강과 바다에 생태도시의 밑그림이 당최 어울리지 않는 탓이다./글=이종섭 기자ㆍ사진=김상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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