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영제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장 |
역사가인 Gordon Wood는 “와싱톤이 위대한 영웅으로 갈채를 받았던 것은 유혹이 난무하는 시대에 자기를 관리하는 도덕적 성향(moral character)을 가지고 있었고 이것이 바로 다른 사람으로부터 그를 구별시켜주는 것 이었다”고 기술하였다.
와싱톤은 결국 우리가 말하는 소위 품위장전(Dignity code)을 철저히 섭렵하여 실천 하였는데 이것은 바로 미국 헌법의 기초가 된 전제 사실 즉, “인간은 자기의 감정 폭발에 의하여 순식간에 파탄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위험에 항상 직면해 있는 불완전한 결점투성이(flawed creatures)에 지나지 않으므로 인간의 욕망을 억제하고 그 균형을 유지해 주기위한 인공적인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품위장전은 그의 추종자들로 하여금 개인적인 이익보다는 국가의 이익을 앞세우도록 하였고 또한 자기 자신을 대중에 너무 선전하여 자기의 품위를 떨어뜨리지 않도록 신중하게 행동하도록 하였다. 항상 모든 일을 냉정하게 판단하여 불뚝성질 이나 시기질투, 분노, 정치적 야심에 냉정하도록 해주는 지침이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유산은 한동안 계속 되어 미국역사의 대부분동안 정치인들은 자기가 스스로 대통령이 되겠다고 공개적으로 캠페인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공개적으로 자기를 프로모숀하는 것은 스스로를 타락시키는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기들의 전기를 쓸 때에도 자기의 사생활의 내면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고 19세기에 이르러서도 혹시나 기자들이 자기들의 결혼기사를 신문에 보도함으로써 오염시키지 않을까 두려워했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에는 이러한 품위장전이 사라져 버렸다고 한탄하는 사람들이 많다.
첫째 이유는 자본주의의 성행 때문이다. 자기 자신의 브랜드를 선전관리 해야 하고 미식축구선수가 골을 득점했을 때 현란한 자기 퍼포먼스를 하는 것처럼 자기선전을 극대화하도록 강요되고 있고.
둘째로 자연본능 표현주의(naturalism)의 만연이다. 자기의 세련됨이나 자기억제 등을 과감히 버리고 자기의 자연스러운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는 것이 미덕인 것처럼 되었다.
셋째로 무엇이든 가사 잘못 된 점이라고 하더라도 공개적으로 자배하는 것이 카리스마 있는 복음(charistmatic evangelism)처럼 유행 하고 있고, 넷째로 극단적인 평등주의와 귀족적 태도에 대한 혐오감이 만연되어 있어 과거의 품위장전은 현대생활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요즈음 이러한 행태가 만연되고 있다. TV를 보더라도 함부로 남을 공격하고, 남의 잘못을 폭로하고 심지어 연예인들이 자기의 간통사실을 뻔뻔스럽게 공개한다든가 정치인들이 자기의 사생활의 잘못이나 범법행위를 대수롭지 않게 공개적으로 변명한다든가하는 뻔뻔스러움이 반영되고 있어 시민들도 그런 뻔뻔스러움에 중독이 되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심지어 그러한 행위를 대단히 용기있는 행위로 간주하여 그런대로 덮어두거나 묻혀버리는 일들이 우리 주변에 수없이 일어나고 있다.
자기들의 감정의 흐름을 통제해주는 사회적규범(Social norms)을 갖지 못하고 있음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일들인 것이다.
아직도 사람들은 품위(Dignity)를 흠모한다고 주장 하지만 보다 큰 가치의 틀인 윤리규범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져있는 말이나 표현을 서슴없이 하고있다.
요즘들어 와싱톤 대통령이 매일 암기하고 실천하였다는 110개의 품위장전을 반성하는 마음으로 다시한번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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