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출범 60년을 맞는 대전은 우리나라 최대의 교통요충지로 역사와 문화면에서 독특한 색깔을 드러내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특히 회덕의 토족 회덕 황씨가 600년 전 운영한 미륵원은 3대에 걸쳐 대전지역을 거쳐 삼남지역을 오가는 길손들에게 무료로 숙식을 제공했던 최초의 사회복지시설이자 나눔을 실천한 곳이다.
언제 처음 세워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고려 말 회덕 황씨의 2대조 황연기가 중건해 3대 110년(1332~1440)간 덕행을 이어왔으며 이곳을 찾는 길손들이 여름에도 더위를 피할 수 있도록 미륵원 남쪽 부근에 남루(南樓)를 짓기도 했다.
여행자를 대상으로 한 구호활동으로 시작해 시설 확장과 함께 사회봉사활동으로까지 확대된 대전지역 최초의 민간 사회복지기관인 미륵원은 우리 고유의 미풍양속 중 하나인 후덕한 인심을 상징하는 중요한 유적으로 이색과 하륜, 변계량, 정인지, 송시열 등 정치와 학문적으로 유명한 당대 인물들이 이 곳을 찬양하는 글(제영기·題詠記)을 남기고 있어 그 위상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미륵원과 남루는 조선후기 이후 폐허가 되어 터만 내려오다 지난 1980년 대청호가 생기면서 미륵원지 대부분이 수장되고 그 일부와 남루고지가 대청호변에 남아 있는데 지금의 남루는 정면 4칸의 이축된 한식 건물로 송시열 등 당대 선비들이 남루에 머물 때 쓴 칠언팔구시(七言八句詩)가 아직도 누(樓) 안에 걸려 있다.
현재 미륵원에는 황씨 종손인 황경식 할아버지와 육애숙 할머니가 살고 있는데 수시로 찾아오는 답사객들을 늘 밝은 얼굴로 맞이하는 이들은 언제든 와서 자고가도 좋다는 말을 잊지 않을 정도로 과거 황씨들의 인심을 보여주고 있다.
미륵원지를 찾은 김선학(62·대전시 대덕구 읍내동)씨는 “더불어 사는 삶과 나눔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요즘 대전 최초의 사회복지시설인 미륵원은 흔적도 없고 남루마저도 초라하게 복원돼 있어 가슴 아프다”며 “대전시 출범 60년을 맞아 대전을 대표하는 시설들이 제 모습을 찾아 지역의 상징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박연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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