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치규 충남대 예술대학 교수 |
순수 미술과 달리 응용미술로 분류되는 디자인은 디자인 하는 사람이 아니라 쓰는 사람에 의해 평가를 받게 된다. 때문에 디자인하는 사람은 저절로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상대를 위하는 마음으로 작업을 하게 되고 늘 쓸 사람을 생각하는 일방적이 아니라 쌍방적인 작업이 된다.
디자인을 접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복잡하고 다양한 감정과 느낌을 갖게 되는데 잘한 디자인은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만드는 반면 그렇지 못한 디자인은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이런 까닭에 디자인 하는 사람들은 디자인을 잘 하려고 애쓰는 것이고 그런 디자인은 쓰는 사람마저 행복하게 만든다. 디자인은 무엇인가? 쓸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헤아리고 그 마음과 생각을 표현하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디자인의 본질이다. 해서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굿 디자인이라고 하는 것은 언제나 멋진 디자인과 쓰기 편한 디자인 이 두 가지가 충분히 고려된 디자인이어야 하는 것이다.
실제로 매일 아침 눈을 뜨면서 우리는 오늘은 무엇을 할까? 오늘은 어떻게 보낼까?를 머리 속에 그려보게 된다. 펜없이 생각으로 그리는 디자인이다. 이런 생각들이 하루의 생활을 그리고, 꿈을 그리고 우리의 비전을 그린다. 우리는 매일 우리의 삶을 디자인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운전을 하다 보면 만나게 되는 신호등도 디자인이다.
그 신호등을 움직이는 신호체계도 디자인이다. 디자인이 잘된 신호등은 보기에도 좋다. 보이지 않는 신호 체계 조차 디자인이 잘되어야 운전자를 짜증나게 하지 않는다. 디자인이 잘못된 신호체계는 신호등의 역할과 의미를 무색하게 만든다. 똑같은 신호라 하더라도 디자인이 잘된 신호체계는 복잡한 거리에서도 차량의 흐름을 물 흐르듯 달리게 하고, 운전하는 사람의 마음(인성)까지도 즐겁고 부드럽게 만든다.
때문에 사람들은 디자인이 좋아야 한다 디자인이 잘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디자인은 잘 쓰기도 해야 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디자인은 일방적이 아니라 쌍방적인 작업이기 때문이다. 예컨데 우리가 흔히 쓰는 두루마리 화장지를 보면 대부분이 엠보싱 처리가 되어있다.
엠보싱은 화장지 표면에 올록볼록 요철을 두어 그 부분에 닿는 부분이 잘 닦이도록 디자인된 제품이다. 그러나 대부분 화장실에 걸려 있는 화장지를 보면 반대로 걸려 있는 경우를 흔히 목격하게 된다. 엠보싱 화장지는 두루마리를 말았을 때 볼록한 부분이 밖으로 나와야 디자인의 진가가 발휘 되는데 그냥 무심코 사용하는 사람들의 무심함으로 잘한 디자인의 가치가 무용지물이 되고 있는 것이다.
요즘 기업에서는 디자인 경영이 화두라고 한다. 제품의 기능적 차이에 대한 구분이 어려워지면서 심미적 기능뿐 아니라 사용시 만족도까지 고려한 디자인의 가치는 어느 때보다 기업의 핵심 경쟁력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대부분 우리 생활을 편리하게 하려고 애를 쓴 첨단 제품들이고 보면 이러한 첨단 제품들이 단지 보기에 좋은 디자인만 추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기업이 심혈을 기울여 잘 하려고 애쓴 만큼 디자인을 제대로 쓰려는 사용자들은 얼마나 될 지 문득 궁금해진다. 좋은 디자인, 잘된 디자인은 잘하려고 애쓴 만큼 제대로 활용되어야 그 가치도 생활도 즐거워지게 된다.
디지털 시대, 세상은 디지털화의 가속으로 갈수록 차가워지고 팍팍해진다. 디자인이 더욱 필요해지는 이유다. 차갑게 태어나는 디지털 제품을 보면서 사람들은 따뜻한 아날로그를 그리워한다. 그런 요즘 사람들에게 디자인은 마음 따뜻한 아날로그다. 차갑고 딱딱한 디지털에 입혀지는 따뜻한 아날로그, 디지털도 첨단도 디자인을 만나면 따뜻해진다. 이제는 디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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