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용길 충남대 경영학과 교수 |
진보는 평등과 분배를 중시하고, 국가의 개입을 강조한다. 반면에 기존의 사회제도나 시스템이 비교적 바람직하며 아주 점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는 입장이 보수적 이념이다. 보수는 자유와 성장을 중시하고, 시장의 역할을 강조한다. 따라서 좌와 우, 또는 진보와 보수는 역사를 바라보는 개인과 집단의 가치관과 시각의 차이를 반영하는 것이고 어느 것이 우월하다고 할 수 없다.
그런데 현 정부는 좌도 우도 아닌 중간지대인 ‘중도’를 국정의 지표로 삼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불가능한 이야기이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의 이념적 좌표는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중도보수, 중도진보라는 말은 있어도 무색투명한 중도라는 것은 말장난이라는 이회창 총재의 지적은 옳다.
남북문제와 통일정책, 분배와 성장의 경제정책, 노사관계의 해법 찾기, 또는 대미 관계의 설정 등에서 무색투명하게 중립적 관점에서 현상을 바라보고 답을 찾을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이 정부는 왜 스스로 중도라는 말을 꺼낸 것일까? 그것은 지난 1년 반 동안 지나치게 ‘가진 자’ 중심의 보수주의 색채를 띠었기 때문에 민심이 돌아섰고 이를 만회하고자 제기된 것이라 볼 수밖에 없다. 즉 현 상황의 어려움을 모면하고자 나온 진정성이 결여된 국면전환용 요소가 강하다고 볼 수 있다.
둘째로는 ‘실용’이라는 말의 허구성이다. 원래 실용주의는 관념적 이념적 논쟁보다는 실제 생활에 쓸모있는 이론과 정책적 대안을 강조하는 입장이다. 이명박 정부는 스스로 실용정부라는 말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규정하여 서민과 중산층의 어려움을 덜어주고 경제를 살리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집권 이후 이명박 정부가 보여준 것은 강부자 내각을 필두로 하여 ‘1% 부유층’의 기득권을 강화하는 정책을 우선적으로 실시하였다. 각종 감세정책을 통해 가진 자들의 곳간을 더 채워주었으며, 규제완화를 통해 대기업의 시장지배력을 더욱 강화하였다. 남북의 화해와 공존, 그리고 평화적 통일을 위해 지난 10년 동안 공들여 쌓아왔던 남북관계를 하루아침에 무너뜨리고 한반도에 대립과 전쟁 위협을 고조시키고 있는 작금의 상황은 실용주의와 정반대로 가고 있는 대표적 정책이다. 탈이념을 선언한 이 정부가 스스로 이념의 포로가 되어 남북간의 대결을 유도하고 있으며, 북핵문제에서도 적극적 해결자가 아닌 소극적 방관자의 위치로 전락하고 말았다.
중도 실용으로 국정의 방향을 바꾸겠다고 하는 것은 그 진정성이나 실효성 측면에서 타당성을 찾아보기 어렵다. ‘중도실용론’이 현 상황의 어려움을 모면하고자 나온 궁여지책이 아니라면 이명박 정부는 먼저 철저한 자기성찰과 반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중도실용론은 미국 클린턴 대통령의 ‘삼각화’ 전략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그러나 삼각화 전략의 핵심은 좌도 우도 아닌 중간지대로서 중도를 설정한 것이 아니다. 필요하면 좌와 우를 뛰어넘어 상대방의 정책까지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포용의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던 것이다. 정치쇼가 아닌 진정한 중도실용이 되기 위해서는 철저한 자기반성과 국민과의 소통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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