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덮듯 온통 희뿌연 도시... 거짓과 맞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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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덮듯 온통 희뿌연 도시... 거짓과 맞서다

■화제의 책 : 도가니

  • 승인 2009-11-26 10:07
  • 신문게재 2009-07-08 12면
  • 김필수 대훈서적 기획실장김필수 대훈서적 기획실장
다음 연재 조회수 1,100만! 뜨거운 호응과 화제를 불러 일으킨 공지영의 <즐거운 나의 집>이후 2년만의 새로운 소설 <도가니>가 출간 즉시, 뜨거운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도가니』는 2008년 11월 26일부터 올 5월 7일까지 포털 Daum의 ‘문학 속 세상’에 연재한 원고를 심혈을 기울여 보완하고 다듬어 출간하는 것이다. 문단의 주목과 대중의 사랑을 동시에 받으며 우리 문단의 중심적인 작가로 자리 잡은 공지영의 이번 신작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감동을 선사한다.

이 소설은 지난 2005년 TV 시사고발 프로그램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 광주의 모 장애인학교에서 자행된 성폭력 사건에 대한 취재를 바탕으로 씌어진 소설이다. 작가는 현장에서 오랜 기간 취재하고 자료를 수집한 뒤 집필에 임했다.

작품 곳곳에 묘사된 폭력과 성폭행 장면은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끔찍해서 읽는 이로 하여금 종종 가슴을 쓸어내리고 숨을 고르게 만든다. 하지만 작가는 소설에 묘사된 사건과 사실은 실제 일어난 것에 비하면 3분의 1도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광주지법 제10형사부는 28일 교내에서 장애학생들을 성추행하거나 성폭행한 혐의(청소년성보호에관한법률 위반 등)로 기소된 이 학교 전 교장 김모씨에 대해 징역 5년과 추징금 300만원을, 이 학교 부속 복지시설인 인화원의 전 생활재활교사 이모씨 등 3명에게 징역 6-10월을 각각 선고하고 앞서 구속기소된 이씨를 제외한 나머지 3명을 법정구속했다.

전교조, 참교육학부모회, 장애인인권연대 등 지역 사회단체들이 이 문제를 제기한 2005년 7월 이후 2년 반만의 일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법원의 항소심에서 이들은 집행유예로 모두 풀려났다.

이 소설의 주인공 강인호는 아내의 주선으로 남쪽 도시 무진시에 있는 청각장애인학교 ‘자애학원’의 기간제교사 자리를 얻어 내려가게 된다. 한때 민주화운동의 메카였던 이 도시는 ‘무진’이라는 이름이 암시하듯 늘 지독한 안개에 뒤덮이는 곳이다. 첫날부터 마주친 짙은 안개 속에서, 그리고 청각장애를 가진 아이들과 교사들이 다수인 무섭도록 고요한 학교 분위기에서 그는 불길한 예감을 느낀다.

한 청각장애아(전영수)가 기차에 치여죽는 사고가 나도 이를 쉬쉬하는 교장, 행정실장, 교사들, 그리고 무진경찰서 형사 사이에서 강인호는 모종의 침묵의 카르텔이 작동하고 있음을 감지한다. 부임한 첫날부터 우연히 듣게 된 여자화장실의 비명소리를 신호탄으로 강인호는 점차 거대한 폭력의 실체를 알아가게 된다.

학교와 기숙사에서, 듣지 못하는 장애아들(김연두 전민수)과 중복장애를 가진 학생(진유리)에게 끔찍한 구타와 성폭행, 성추행이 오랫동안 빈번하게 자행되어왔던 것이다. 영수의 죽음과 그전에 있었던 학생들의 자살 역시 구타와 성폭행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그 가해자는 다름아닌 자애학원 설립자의 쌍둥이 아들들인 교장과 행정실장이고, 여기에 기숙사 생활지도교사도 가세했던 것이다.

강인호는 대학 선배이자 무진인권운동쎈터 간사인 서유진, 최요한 목사 그리고 연두 어머니 등과 함께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고 세상에 알리려고 한다. 자애학원과 결탁한 교육청 시청 경찰서 교회 등 무진의 기득권세력들은 이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온갖 비열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

각 인물과 기관이 거미줄처럼 연결된 무진의 강고한 씨스템은 폭력과 거짓을 동원해 자신들의 치부를 가리고 진실을 은폐하려 한다. 하지만 아이들의 증언이 매스컴을 타게 되면서 무진시는 발칵 뒤집히고, 가해자들은 재판에 회부된다. 주인공과 아이들은 진실이 규명되고 정당한 처벌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된다.

그러나 가해자와 기득권세력의 씨스템은 재판 과정에서도 실정법을 이용한 갖가지 장치를 동원해 더 악랄하게 작동하고, 피해아이들은 재판과정에서 또 한번 인권유린을 당한다. 결국 기대와 다른 재판결과는 피해자측에 커다란 상처와 절망을 안겨준다. 그러나 세상 모두가 거짓을 이야기해도 진실을 놓을 수 없는 이들은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고 다시 싸움을 이어간다는 내용이다.

작가는 “지난해 여름 항소심에서 가해자들이 집행유예 등으로 모두 풀려난 사건을 <한겨레> 기사에서 읽은 것이 <도가니> 집필의 계기가 되었다”고 소개했다.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리 폭로 때 국가 전체가 나서서 덮는 모습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고, 독재 권력의 억압만이 문제가 아니라, 상류층 사람들이 담합해서 서로의 죄를 덮어 주는 구조적 문제 역시 심각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다.” 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소설은 결국 주인공 강인호가 힘에 부치는 싸움을 포기하고 평범한 소시민으로 돌아가는 장면으로 끝난다. 평론가 염무웅씨의 말을 빌리자면 작가의 ‘미학적 균형감각’이 ‘윤리적 상상력’을 상대로 일단 승리를 거둔 셈이다.

아직까지도 장애인 교육여건이 형편없이 낙후되어 있는 한국, 경제 위기에 휩쓸려 지금 그들은 더 매서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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