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창곤 대전 프랑스문화원장 |
공사판 먼지로 뿌연 창 너머로 보이는 이곳의 일상도 아저씨들의 반바지 지름만치나 헐렁하기만 하다. 요새처럼 바쁘다는 세상에, 이곳 주민들의 왕래는 이상하게도 그 옛적의 ‘산보’의 모습을, 더 나아가서는 특별한 목적지가 없는 ‘배회’의 모양을 띠고 있다.
언론들에서 우스꽝스럽게 떠드는 ‘느림의 미학’이 이곳에서는 매일의 일상이고, 특별한 자각증상 없이 호흡하는 자연(自然)의 공기인 셈이다. 이러한 관찰이 가능한 것은, 아파트의 주민들과는 반대로 우리 동네 주민들의 생활반경은 ‘집·밖’이기 때문이다. 우리 앞집 동은액자 사장님의 작업과 휴식은, 열려진 유리문을 매개로, 태반이 가게와 보도(步道)를 근거로 이루어지고, 그 옆 부여수퍼 할머니의 요즈음 고정석(固定席)은, 가게 앞의 낡은 철제의자이다.
할머니의 친구 한분이 매일 몇 시간 정도는 함께 앉아 할머니의 고독을 반분하는 곳도 가게 밖이고, 액자 사장님이 일요일에 더 열심히 일한다는 비밀을 알게 된 것도 결국은 이 ‘집·밖 문화’의 덕택인 셈이다. 몇 년이나 함께 살고 있는 아파트의 이웃들에 관한 정보의 총량보다 일주일 만에 파악한 이 곳 주민들의 생활 모습이 훨씬 구체적이라면, 공동과 개인주택으로 분리되는 우리의 주택분류가, 적어도 이웃과의 소통이란 차원에서는, 서로 이름을 바꿔달아야 할 판이다.
어디 한적한 시골동네의 모습으로나 비춰질 이곳은, 다름 아닌 대전시 중구 대흥동 411번지 부근의 모습이다. 윗글에서 주제넘게 ‘우리 동네’라고 적은 이유는, 시민들과 다양한 문화의 교류를 시도코자하는 나의 오랜 꿈이 프랑스문화원 대흥동분원이란 형태로 이곳에 자리 잡을 예정이고, 조만간에 나도 이곳의 주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구태의연(舊態依然)’하기만한 이웃들의 모습이 나의 자화상이고, 우리들의 대흥동 정착은, 어쩌면 이들의 모습이, 이러한 옛 모습의 현존이, 요사이 이삼십년간 우리 사회를 오염해온 어설픈 문화들을 외면하고, 새로운 ‘문법(文法)’을 상상케 하는 가장 적절한 토양일 수밖에 없다는 나의 오래된 생각에서 비롯된다. 물론 저렴한 임대료가 이러한 결정에 일조를 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해서 이곳에서는 사람의 모습을 한 문화가, 그래서 서로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구체적인 예술이 우선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동은액자 사장님은 우리들의 중요한 비평가가, 부여수퍼 할머니는 우리의 주요한 관람객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예술이란, 당의정으로 포장된 이해하기 쉬운 예술도, 또 빛바랜 민중예술의 기치를 들자는 것도 아니다. 명칭(名稱)한다는 것이 그 실체를 이해했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한다면, 적어도 우리가 보고, 듣는 모든 행위들이 설명되어져야 한다는 바램에서이다. 그리고 이러한 설명은 어느 탁월한 선지자의 몫이 아니라, 축적된 정보의 힘에서 만이 비롯될 수 있다는 평소의 생각에서 우리 대흥동 문화원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의 하나를 예술관계 자료도서관에 할애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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