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서울올림픽. 바벨을 들어 올리던 이지봉은 아픈 심장을 부여잡고 쓰러진다. 선수 생활을 끝낼 수밖에 없었던 그는 전 코치의 권유로 보성여중 역도부 코치를 맡게 된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역도를 떠난 지 오래. 역도를 ‘몸과 마음을 망치는 못된 운동’이라며 “절대 해선 안 된다”는 그를 탈바꿈시키는 건 천진한 시골 소녀들이다.
전남 순창고 역도부가 이룬 이 사건은 그야말로 ‘땀과 눈물로 일군 기적’이었다. 소녀들은 역도 봉이 없어 대나무로 연습하고, 매트리스 한 장 없이 흙바닥에서 바벨을 들며 기적을 일궜다. 정인영 김용철 윤상윤 세 교사가 시골 소녀들에게 역도를 가르쳤고, 정인영 교사는 1년 후 과로로 인한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떴다.
‘킹콩을 들다’는 순창고 역도부와 정인영 교사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았다. 학교는 ‘차(茶)의 고장’ 보성으로 바뀌었지만 당연히 소녀들은 대나무로 연습하고 흙바닥에서 바벨을 든다. 당연히 기적을 이룬다.
영화는 지도교사의 이야기를 축으로 여섯 소녀의 분투기를 웃음으로 버무려 들려준다. 소녀들은 제각각 아픔을 안고 있다. 소녀들이 바벨을 머리 위로 애써 들어 올리는 행위는 자신들의 ‘삶의 무게’를 지탱하려는 안간힘이었고 희망을 획득하려는 행위였다. 소녀들은 지도교사의 보살핌으로 세상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고 그 인간승리를 지켜보는 관객들에게 감동 ‘한 보따리’를 선사한다.
그래서 영화는 역도를 소재로 한 ‘스포츠 영화’라기보다 오합지졸 역도 소녀들이 참된 스승을 만나 인생을 깨달아가는 성장 영화에 가깝다.
전보미는 ‘빵순이’라고 놀림 받지만 늘 당당한 역도부 주장 현정을, 이윤희는 역도복의 섹시함에 반한 S라인 ‘4차원’ 소녀 민희 역을 맡아 영화에 힘껏 생기를 불어넣는다.
최문경은 어머니를 돕기 위해 역도부를 지원한 속 깊고 정 많은 효녀 여순을, 김민영은 교탁과 책상 무엇이든 번쩍번쩍 드는 괴력소녀 보영을, 이슬비는 FBI가 되는 게 인생목표인 수옥을 사랑스럽게 소화해냈다.
예쁜 척은커녕 튼실한 팔다리를 드러낸 역도부원들. ‘왜 역도인가’를 고민하기보다, ‘주어진 걸 그냥 열심히 하고 싶을 뿐’인 소녀들은 아픔을 지니고 있지만 씩씩해서 절로 마음이 간다.
아쉬운 건 눈물을 짜내려 애쓰는 후반부다. 스포츠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과장되고 극적인 내용은 너무 도식적이고, 비극으로 점철된 절절한 신파드라마는 감동을 주겠다는 감독의 의도를 감안한다고 해도 너무 억지스럽다.
코끝을 찡하게 하다가 폭소를 터뜨리게 하고 다시 눈물바다로 이끄는 감정의 진폭을 조금은 다독였으면 어땠을까 싶다.
어쨌든 오랜만에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한국영화의 등장은 반갑다.
“수많은 사람들이 금메달에 도전한다. 하지만 동메달을 딴다고 해서 그 사람 인생도 동메달이 되는 건 아니야. 매 순간 최선을 다해 도전하는 게 중요하다.”
제자들을 가르치는 지봉의 대사는 고루한 격언 같지만 어른들은 물론 자녀들에게도 스스로를 돌아보고 희망을 품게 하는 가르침이 될 것 같다.
제목의 ‘킹콩’은 심장에 차오르는 고통을 견뎌내기 위해 가슴을 두드리는 모습이 킹콩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안순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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