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한수 한국원자력연구원 핵주기공정기술개발부장 |
사용후핵연료는 높은 방사선과 열을 내는 유해한 물질이지만 우라늄이 94%나 되는 등 재활용 가능한 유용한 자원을 다량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사용후핵연료의 유용한 자원을 회수해서 새로 개발하는 고속로의 연료로 사용하고, 이때 높은 독성을 가진 원소들을 함께 태워 소멸시키고 높은 열을 발생시키는 원소들은 따로 분리 저장해서 열원을 제거하면 우라늄 자원을 현재보다 100배 더 활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고준위 폐기물 처분장의 면적을 100분의 1로 획기적으로 감소시킬 수 있다.
사용후핵연료에는 유용한 자원과 함께 핵무기로 전용할 수 있는 플루토늄도 포함돼 있기 때문에, 플루토늄의 전용을 막을 수 있는 핵비확산성 사용후핵연료 재활용 공정 개발이 필요하다. 그래서 전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는 것이 파이로프로세싱 기술을 이용한 건식처리 공정이다. 파이로프로세싱은 독성이 강한 물질들을 한꺼번에 하나의 집합체로 회수하기 때문에 플루토늄만 단독으로 분리할 수 없어 핵비확산 측면에서도 매우 안전한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파이로프로세싱 기술은 사용후핵연료의 피복을 벗겨낸 뒤 핵연료 펠릿을 산화시키는 고온산화 공정과, 산화물을 금속으로 환원시키는 전해환원 공정, 금속에서 우라늄만을 정련하는 전해정련 공정, 우라늄 및 플루토늄, 악티나이드 혼합물을 회수하는 전해제련 공정, 염속에 포함된 불순물을 제거해서 순수한 염을 회수, 재활용하는 염폐기물 처리 공정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일반인들에게는 상당히 복잡하게 들리겠지만 연구진에게도 기술의 실용화를 위해서 해결해야할 부분이 적지 않다. 특히 공정의 특성상 고효율 대용량 기술 개발이 난제라고 할 수 있는데,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최근 전해정련 공정에서 흑연 음극과 스크류를 이용한 연속 이송 등 획기적인 개념을 도입해서 처리 속도를 수십 배 향상시켜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이를 토대로 앞으로는 각 단위공정의 연계성을 증진시키는 연구뿐 아니라 처리용량 증대 연구를 병행할 계획이다.
지난해 12월 정부는 계속 증가하는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개발 방향을 담은 ‘미래 원자력시스템 개발 장기추진 계획’을 확정했다. 이에 따르면 2011년까지 모의 핵연료를 이용한 실증시설인 PRIDE 구축해서 종합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2016년까지 실제 사용후핵연료를 사용하는 실증시설인 ESPF를 구축할 계획이다. 이같은 계획이 실현되면 사용후핵연료 재활용 기술에 있어서는 확실하게 세계적 기술적 우위를 점하고 기술 실용화에 박차를 가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에너지 수요 증대와 환경보존의 두 가지 문제를 풀고 저탄소 녹색성장을 실현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원자력임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어 보이지만, 원자력이 진정한 대안이 되기 위해서는 사용후핵연료 재활용 기술인 파이로프로세싱 건식처리 공정 개발이 반드시 필요하다. 파이로프로세싱은 과거와 현재에 발생한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현 세대에서 해결함으로써 미래 후손들의 짐을 덜어주기 위한 올바른 선택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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