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성칠 대전·충남 민예총 사무처장 |
형님! 얼마 전에 있었던 일 때문에 형님 생각이 더 났습니다. 그날은 아침부터 비가 올 듯 하면서 비는 내리지 않고 잔뜩 하늘은 찌푸리고 있습디다. 전날 과음의 뒤끝으로 부석한 얼굴을 간신히 수습하고 행장을 꾸려 부랴부랴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가는 동안 내내 마음이 헛헛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면서 그 괴팍스런 내 맘이 어디를 향하는지 종잡을 수가 없더라고요. 병원에 도착하니 영안실에서는 발인을 준비하고 있고요. 밖에서는 커다란 영정사진과 영정사진 만큼이나 큰 붉은 명정, 그리고 흰 꽃으로 뒤덮인 꽃상여까지 차려져 있고 그 주위에 검은 조끼를 입은 상두꾼 여럿이 몇 번씩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열을 맞춰보곤 합디다.
검은 만장에는 흰 글씨로 생전에 고인이 그토록 열망하던 새 세상에 대한 기원과 의지, 격문들이 쓰여 나래비를 서고 있었습니다. 제 할일 때문에 호상을 만나보고는 앞에서 준비하고 있었는데요. 준비하는 중간 제가 불현 듯 고개를 들면서 걸개그림에 그려진 초상의 눈빛과 마주치게 됐는데 그 순간 제 몸이 확 오그라들더군요. 벌써부터 보아온 초상인데 그 순간은 왜 그렇게 더 강렬하게 느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형님! 그 느낌 아시죠. 예전에 우리가 5월을 마주할 때마다 느꼈던 그 느낌말입니다. 그 느낌을 다시 30년이 다된 오늘에 또 느껴야하는 이 상황을 어떤 말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형님은 제 이야기 아시죠? 무슨 느낌인지.
그렇습니다. 우리가 꿈꿔왔고, 제대로 한번 만나보고자 했던 그 세상은 아직도 멀었나 봅니다. 그리고 이런 희생을 더 필요로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이건 아니죠. 그렇게 많은 목숨이 바쳐졌는데 얼마나 더 피를 흘려야 한단 말입니까? 형님! 우리 예전에 수많은 시간을 같이 울면서 역사의 한끝을 붙들고 한없이 토해냈던 것 기억나시죠? 우리 못난 놈들끼리 손잡고 깨진 이마 붙들고 그렇게 가보자고 했던 그 조각난 가슴의 맹세를요.
병원에서 발인을 하고 영결식장까지 가는 길에 구슬픈 상여소리가 울려 퍼지네요. 많이 익숙한 음률입니다. 주위 동네에선 많은 시민들이 나와서 고인 가시는 길을 배웅하고 있고요. 상여를 따르는 많은 사람들은 슬픔을 짓누르고, 분노도 가슴에 싸서 담고 그렇게 묵묵히 아스팔트 위를 걷고 있었습니다.
멀리서 이 소식 들으며 많이 울 우리 형님께도 들리실 겁니다. “어~허~ 어화. 어~화~넘자 어~화” “북망산천 멀다드니.....” 그렇게 우리가 보내드렸습니다. 젊디젊은 우리일꾼 박종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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