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성적이 나쁘면 내일 밥줄이 끊어지는 생리로 치면 축구계가 더 파리목숨이다. 감독-사장의 동반 퇴진이 2년 만에 재현된 대전에서 그 사실을 일부 공감하는 안쓰러움을 뒤로 하고 생각한 것은 감독 교체가 팀에 미칠 영향이다. 관련 논문을 보니 스페인과 그리스에서 감독 교체 후 57.1%가 팀 성적이 같거나 낮다. 또 감독 교체로 성적 호전의 증거를 못 찾겠다는 분석은 잘린 감독 28명을 연구한 경제학자 뤼트 쿠닝의 결론이다. 감독 경질로 더러는 반짝효과를 본다. 2년 전 김호 감독이 대전에 오자 막판 5연승 끝에 6강 플레이오프 진출 티켓을 거머쥔 전례가 이 범주다. 바로 그 노(老)감독이 계약기간 6개월을 남기고 물러난다.
시즌 종료 1경기를 남기고 첼시 감독 스콜라리를 바꾼 초강수보다야 ‘양반’이라고? “감독은 명예만 있을 뿐 아무것도 없다”던 김 감독이 느끼기로는 스타일도 방법론도 심할 것이다.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이 생각난다. 그는 수많은 전투에 이기고도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에 패해 두고두고 패장으로 기록된다. 평생을 축구밖에 모른 김 감독의 고뇌는 아마 이런 유일까. 잘 나가면 태클 들어오고, 결정적일 때 돌발상황 생기고…, 무엇보다 명장이 패장 되는 건 한순간.
그게 축구와 전쟁의 공통점일 것이다. 관중이 넘치면 할 맛 나고 관중이 있으면 될 일도 안 되는 차이, 축구와 섹스의 차이점이란다. 골키퍼의 허점을 노리고 골키퍼와 혼연일체를 노리는 차이, 하나는 한 팀만 웃고 하나는 양쪽 다 웃어야 좋다는 차이도 있다. 이 저렴한 비유의 측면에서 김 감독은 좋은 플레이를 보이진 못했다. 표면적인 이유도 성적 부진과 구단과의 불화다. 그리고 계약직인 감독은 구단 결정에 따라야 한다.
운명이다. “인간은 언젠가 죽고, 축구 감독은 언젠가 잘리게 돼 있다”는 에인 핸드 전 아일랜드 감독의 통박[痛駁] 그대로다. 그러나 곪아 터진 내·외부의 문제들과 이면의 진실, 시스템적 지원 부재, 대전시의 관리 감독 실책에 대한 부담까지 떠안고 떠날 김 감독에게 꼭 이 말을 씌우고 싶지 않다. 너무 야박해서다.
대한민국 최초의 시민구단, 축구특별시민이 담아둘 것은 따로 있다. “인간의 도덕과 의무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걸 축구에서 배웠다”는 카뮈의 역설이다. 대전 시티즌 발전의 발판을 만든다는 감독의 꿈을 혁신적이고 파격적으로 잘라버린 이번 선택이 팀 성적 향상을 담보한다는 뚜렷한 증거를 찾아내고, 현존하는 벽을 걷어낼 차례다. 사르트르도 “축구에서는 상대방의 현존으로 인해 모든 게 혼란스럽게 된다”고 거든 적 있다.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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