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시설은 그야말로 고색창연하거나 우리보다 못한 것 같았지만, 법정신은 명문가의 기상처럼 살아 있음이 느껴졌다.
▲ 손차준 변호사 |
첫째 법정 재판과정을 모두 녹음하고 조서나 소송기록을 만들지 않으며 법정에는 1사건만 진행되고 후속 사건 대기자가 없었다.
둘째로 법정에 한 당사자의 변호사가 2명씩 나와 있었다는 점이었다. 영국에는 사무변호사와 법정변호사가 구별되어 사무변호사는 의뢰인을 직접 만나 사건을 상담하고 처리하는데, 법정에서의 소송진행은 법정변호사에게 다시 의뢰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변호사 비용이 2배나 들게 되는 고비용을 어찌 감당하는지 궁금해졌다.
더구나, 패소자가 소송비용을 부담하는 원칙은 이 나라나 우리나라나 같으나, 그중 변호사비용을 소송비용으로 산입하는데 있어서 우리나라는 일정범위로 제한하는데 반해 영국에서는 2명의 변호사 비용을 그것도 실제 들어간 비용을 모두 산입한다. 뿐만 아니라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도 있어 그야말로 패소자는 일거에 망하는 길이 열려 있는 것이다.
셋째, 영국에서는 1심 재판으로 분쟁이 거의 해결되고 그것도 대부분 조정과 화해로 종결된다. 그러므로 항소심 사건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자연히 1심을 강화하여 판사는 변호사 10년 이상 경력이 있는 사람 중에 선발한다.
그동안 삼세판이라는 3심제가 무슨 금과옥조라고 생각한 나의 편견은 산산히 부서졌다. 따라서 변호사도 판결을 받아주는 것 보다 분쟁을 해결해 준다는 측면에 큰 비중을 두고 있었다.
그러니 영국은 법치의 역사가 몇 백년이 되고 수많은 판례가 축적되어 있어 분쟁 해결의 바로미터가 많이 집적된데가 분쟁이 해결되지 않아 법정에 가더라도 앞에서 본 2인분의 변호사비용에 패소자의 실비 배상까지 겹쳐 일단 판결에서 패소할 경우 위험부담이 너무 커지게 되므로 당사자는 이런 부담을 회피하기 위하여 최종 판결보다는 타협과 조정을 선호하게 된단다.
이 경우 법원이 나서서 강권하지 않아도 패소의 가능성이 큰 사람이 자연히 더 많은 양보를 하게 되는 경향이 뚜렷하여 이 나라에서의 조정은 정의와 함께 가기 마련이란다.
어찌 보면 고비용을 부담시키는 제도가 오히려 스스로 타협과 조정으로 나가도록 유도하게 만든다는 패러독스를 어찌 이해해야할까?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언제부턴지 정치분야 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우리들에게는 타협정신이 부족하게 느껴진다. 법률분쟁에서도 “모 아니면 도”식의 벼랑끝 전술이 다반사라, 재판도 3세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위증이네 무고네 고소하여 재심 3세판으로 이어져 7전8기의 소송도 생긴다.
이러한 상황에서 법원에서 조정건수만 높이려는데 집착하다 보면 사건떼기 식의 조정으로 흘러 자칫 이겨야할 심약한 당사자에게 양보를 더 요구하거나 비타협자보다 타협자에게 더욱 양보를 끌어내는 식의 조정으로 원성이 생길 수도 있다.
힘들어도 정의롭기 위해서는 부드럽되 단호해야 한다. 조정은 진실과 정의와 같은 길을 걸어야 모두에게 사랑받는 제도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