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출생의 축하를 받는다. 나라의 세자를 낳을 땐 온 국민의 경하를 받고 백성들도 집안과 동네의 축하를 받는다.
▲ 이인구 13,15대 국회의원ㆍ계룡건설 명예회장 |
1년이 지나면 돌잔치를 크게 하고 매년 생일이 오면 집안 잔치를 하게 된다. 인륜대사인 결혼식도 있고 60이 되면 친지와 친척을 모두 초청하여 환갑잔치를 크게 치루고 61이 되면 진갑잔치를 치룬다.
70이 되면 칠순잔치, 77이 되면 희수잔치, 80이 되면 팔순잔치, 88이 되면 미수잔치, 90이 되면 구순잔치, 99가 되면 백수잔치를 크게 치룬다. 그 사이 결혼 60주년이 되면 회혼례잔치도 있다. 결혼 50주년 금혼식, 40주년 은혼식도 있다. 이러한 경사는 미리 예정하는 것이므로 당사자나 그 자손들이 모든 비용을 마련하여 베푸는 축제가 되는 것이 전통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근세에 와서는 이러한 경사가 사회적 부담으로 치러지는 경향이 되고 있다.
경사가 있으면 동네방네 친지친척들께 초청장을 발송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신문에 광도도 한다.
흔히들 모시는 초청장이 아니라 와서 축하해 달라는 고지서로 부담을 느낄 때도 있다. 대가의 경사에 봉투 들고 찾아오는 축하객은 1,000명이 훨씬 넘는 것이 오늘의 사회현상이다.
관혼상례의 문화적 원류가 같은 이웃 중국이나 일본은 경사의 초청제도가 사회적 규범으로 간소하게 제도화 되고 있다.
환갑, 진갑잔치는 아예 없어졌고 칠순, 팔순, 구순잔치도 없어졌다. 77세 희수, 88세 미수, 99세 백수잔치만 있다.
이러한 잔치는 호텔예식장이나 가정에서 거행되는데 초청장은 절대로 200명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보낸다.
사전에 참석여부 회신을 받은 초청객만이 파티장 테이블에 표시한 좌석에 앉을 수 있게 된다. 초청받은 축하객은 다소의 찬조금을 내기 마련이고 주최측은 정중한 답례품을 내놓는다.
호화판 결혼식은 눈총을 살만하다. 수천명이 모이는 호텔호화 결혼식이 주말이면 영락없이 번화가 호텔에서 거행되는데 그 호텔주변은 교통지옥이 되고만다.
지정 택시승강장까지 큰 버스와 자가용 승용차로 꽉 채워진다.
필자는 개인사정과 소신에 따라서 환갑, 진갑, 칠순잔치를 생략했었다. 물론 은혼, 금혼잔치도 마찬가지다.
정치활동을 한참 할 때에 그런 잔치를 치루자면 누구누구를 초청해야하고 서운치 않게 많은 분을 초청하게 되면 장소문제와 혼잡문제가 걱정이 되어서 그랬다.
그날이 다가오면 무슨 구실을 찾아서 아내와 단독으로 해외에 출장 나가 버렸다. 숱한 자녀들에게 허망하게 해준 것은 참으로 미안했다.
나는 9자녀를 두고 있다. 모두 짝지어 결혼시켰다.
첫 딸을 여읠 때 축의금을 접수했었다. 꽤 많은 돈으로 결혼식 행사 비용이 충분했다. 결혼식비용은 혼주인 나의 도리인 것을...
들어온 돈을 나눠서 반은 대전시에 불우이웃돕기성금으로 신랑신부가 직접 가서 접수하게 하고 반은 신혼여행비용으로 쓰게 하였다.
그 후부터는 청첩장에 「※축의금품 사양합니다」라는 표시를 했고 철저하게 접수를 사양했었다.
장례문화에 대하여도 몇 가지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장례는 인륜의 대사이고 가장 장엄하고 격식있게 치러져야 한다.
옛날에 상을 당한 상주는 동네청장년 10여명을 초청하여 부고를 전달해 달라고 요청한다. 이 부고는 일가 친척과 고인과 특별관계가 있는 분들만 골라 보내는 것이다.
지금 우리사회는 대가는 신문부고를 내고 있다.
수천명의 조문객이 성시를 이루며 수백개의 조화를 세워 놓을데가 없어서 헛간에 보관하기도 한다.
범인들은 사정에 따라 3일장, 5일장, 7일장, 9일장을 치루게 되는데 일본이나 미국에서는 이 장례기간은 친지친척이 아니면 문상을 가지 않는 관습이 있다. 다만 하관식에는 고인과 관계를 맺었던 모든 분들이 만사 제쳐 놓고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애도하고 명복을 빌어준다.
우리의 애경사는 요새 여러모로 허례허식의 요소가 많다고 본다. 관혼상례 이대로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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