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과 블룸은 어릴 때부터 생존을 위해 남의 등을 쳐온 사기꾼 형제. 형인 스티븐이 시나리오를 짜면 블룸은 사기드라마를 이끈다. 베를린에서 한탕 크게 벌인 형제와 제3의 멤버 뱅뱅은 뉴저지의 대부호의 상속녀 페넬로페를 새로운 타깃으로 삼아 작전을 꾸민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으니 블룸이 페넬로페에게 사랑을 느끼고, 페넬로페는 사기극의 쾌감을 즐기기 시작한다.
영화 ‘스팅’을 기억하시는지. 느긋하지만 예리한 폴 뉴먼과 한창 혈기왕성한 로버트 레드포드가 환상의 콤비플레이를 펼치는 장면들은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관객마저 속여 넘기는, 속아도 기분 좋은 행복한 사기극이란 ‘스팅’의 테마가 서로 속이려드는 바람에 눈살 찌푸리게 하는 지금도 가능할까.
라이언 존슨 감독도 ‘스팅’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 그는 “캐릭터가 기본이 되는, 사랑이야기가 가미된 사기꾼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블룸형제 사기단’은 그래서 탄생한 사기꾼 영화다. 영화는 물론 블룸 형제가 만든 사기 시나리오에 따라 진행되지만 방점을 찍는 건 사기극이 아니다. 바로 캐릭터.
영화를 이끄는 스티븐과 블룸은 부모 없이 양부모 집을 떠돌며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사기 실력을 발휘해온 형제. 형인 스티븐은 사기 행각의 아이디어를 짜내는 ‘설계자’이고, 동생 블룸은 사기드라마를 이끌어가는 주연배우다.
형제가 노리는 대상은 대부호의 상속녀 페넬로페. 정식으로 배운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전기톱 저글링이나 수준급 피아노 연주를 모두 독학으로 익힌 ‘4차원 아가씨’다. 여기에 입을 열지 않아도 온갖 감정을 표현하는 뱅뱅이 가세해 웃음 만발, 흥미진진한 사기의 세계로 이끈다.
하지만 예상 밖의 일이 생겼으니 페넬로페가 사기극의 쾌감을 즐기기 시작했다는 것. 또 블룸이 그녀를 사랑하게 됐다는 것. 블룸의 사랑은 과연 진심일까 아니면 사기일까. ‘모든 사람이 행복한 사기’는 과연 가능할까.
존슨 감독은 데뷔작 ‘브릭’으로 2005년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신예. 캘리포니아의 한 고등학교를 무대로 한 이 영화에서 틴에이저 물과 필름누아르를 절묘하게 녹여냈다. 그때의 탄탄한 스토리와 감각적인 화면은 ‘블룸형제 사기단’에서도 계속된다. 사기극이란 외피 안에 성장영화와 사랑이야기, 멜로드라마를 매끈하게 녹여낸다.
배우들의 활력 넘치는 연기 또한 매력적이다. ‘피아니스트’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에이드리언 브로디를 비롯해 ‘바벨’의 일본 소녀 기구치 린코에 이르기까지 화려한 캐스팅이 돋보인다. 다만 브로디, 마크 러펄로, 레이첼 와이즈 모두 블록버스터 오락물보다는 예술성과 실험성 있는 작품에서 제 빛을 발휘해왔던 배우들이란 점을 감안하면 이번 영화의 색깔도 짐작할 수 있겠다.
‘스팅’과는 아예 비교를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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