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학교 성당. 영원한 우정을 피로 맹세한 친구들이 죽을 때도 함께하자며 동반자살을 약속한다. 하지만 그날 밤. 그중 한 명인 언주가 생활관 옥상에서 몸을 던진다. 언주의 자살을 둘러싼 미스터리는 학교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언주의 동생 정언은 죽음에 숨겨진 비밀을 파헤치는데. 비밀을 알고 있는 소이와 유진, 은영은 스멀스멀 다가오는 공포의 그림자에 경악한다.
1998년 흥행 불모지였던 한국 공포영화 장르에서 200만 명이 넘는 기대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시끌벅적하게 등장한 영화 ‘여고괴담’. 당시 박기형 감독은 비인간적인 입시 경쟁에 치여 사는 10대들의 고민과 집단 따돌림 문제를 짚어내 평단과 대중의 호응을 함께 붙잡았다.
김태용 민규동 감독의 2편 ‘메멘토 모리’도 공포는 줄었지만 동성애라는 파격적 소재를 진지하게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3편 ‘여우계단’, 4편 ‘목소리’로 이어지면서 ‘여고괴담’ 시리즈는 궤도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한국에서는 거의 유일한 공포영화 시리즈지만 콘텐츠 자체에 대한 기대감은 낮아지고, 대신 새 ‘얼짱 스타’, 누가 등장하느냐 쪽으로 초점이 옮겨간 것이다.
5편 ‘동반자살’도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영화보다 새로 캐스팅 된 영화 속 주인공 5명이 5545대 1의 경쟁을 뚫었다는 화제가 더 관심이다.
“우리는 한날한시 함께 죽을 것을 맹세합니다. 각자 죽는 이유는 달라도 서로의 마음을 깊이 이해해 사랑으로 함께 할 것이니, 만약 누군가 이를 어긴다면 또 다른 죽음으로 맹세가 지켜지게 하소서.”
여고생 넷이 텅 빈 성당에 모여 기도를 올린다. 으스스한 촛불 주위에 둘러앉아 맹세를 나눈 뒤 손가락을 칼로 그어 피의 서약까지 하는 네 사람. 이날 밤 한 소녀가 생활관 옥상에서 몸을 던지면서 끔찍한 ‘귀신 살인극’의 막이 오른다.
여고생들 특유의 ‘동반문화’가 공포로 바뀐다. 학교 갈 때 공부할 때는 물론 화장실 갈 때도 손을 붙잡고 가는 여고생들. 끼리끼리의 문화, 소외당하는 친구, 영원을 약속하는 우정, 동급생에 대한 질투 등등 ‘동반자살’은 남성 관객보다는 여성 관객들에게 더 어필할 영화다.
공포의 수위는 높다. 고막을 긁는 효과음, 화면을 적시는 피, 갑자기 나타나는 귀신 등 ‘깜짝’ 공포의 순도는 높다. 1편처럼 조여 오는 맛은 떨어지지만 화면 어디선가 툭 튀어나오는 귀신은 간담을 서늘케 한다.
다섯 주인공 모두 상습적 가정폭력, 원하지 않은 임신 등 모두 고민을 안고 있다. 하지만 자극에 몰두한 영화는 캐릭터의 속사연에 다가가지 못한다. 죽음을 부른 친구와 친구 사이의 조건 없는 우정, 또 질투와 욕망조차 영화 내내 깔끔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짜임새가 떨어진다는 얘기.
‘여고괴담’ 10주년 기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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