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 교수 |
무슨 일일까? 엘리베이터 게시판에 붙은 긴급 공지를 읽어 보니 W대학 재단에서 기숙사를 지으려고 하는데, 원래의 계획과는 달리 기숙사 신축 부지를 숲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게다가 관련행정부서에서는 요청서만으로 이 개발 사업을 허락했고, 공사를 위한 길을 내기 위해 나무들이 잘려나갔다고 한다.
나무를 이렇게 마구 베어도 되는지? 자기 땅이라고 숲에 코를 대고 사는 주민들에게는 일언반구도 없이 이럴 수 있는지? 관청은 상황이 어떤지 실제로 나와 보지도 않고 요청서만으로 개발을 허락해도 좋은지? 불법 훼손한 산림을 복구하라는 명령에 꼬챙이 같은 묘목 260그루 심고 원상복구 했다고 하고 그만하면 되었다고 서류 정리해도 되는지? 대학이 숲을 망가뜨리면서까지 기숙사 건축을 해서 얻을 이익이 얼마나 큰지? 머릿속이 온통 혼란스럽다.
새로 개발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이런저런 말을 해도 울창한 숲을 가진 동네에 산다고 못내 자랑스러워하고, 집에 손님이라도 묶고 가는 날이면 산길을 돌아오는 아침산책을 즐기던 필자로서는 가슴이 너무 아프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 숲을 보기가 미안하다. 숲은 단시간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망초나 뚝새풀이 가득했을 산촌의 묵밭에서 시작해 해를 거듭하며 토끼풀이니, 억새가 자라다가, 싸리나무, 찔레나무, 진달래가 피고 어디선가 날아온 씨에 의해 소나무, 참나무 등이 자라고 서어나무나 박달나무까지 있게 되면 숲이 완전히 성숙해지는 것이라는 내용을 어느 책에서 읽었든 기억이 새삼스럽다. 이 숲은 어디만큼 성숙해지다가 상처를 입었을까? 나이가 얼마든 온통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지는 않을까? 지난번 이웃사람이 이 산, 숲에서 보았다는 파랑새는 또 어떻게 되는 걸까?
주민들이 이 개발의 위법성을 들어 검찰에 고발했으니 조사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런데 공무원들이 힘 있는 큰 재단의 편을 들어주면 어쩌지, 주민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고 의견을 무시하면 어쩌나. 설마 그러지 않겠지, 나무를 더 심지는 못할망정 숲을 통째로 망가뜨리게 두겠어? 녹색환경을 가꾸는 것이 이 시대 우리 모두의 공통 과제라는 것쯤은 초등학생도 아는데. 꼼꼼히 조사하고 정의롭게 해결하겠지, 자녀들에게 정말 물려주어야 할 것이 돈다발이나 콘크리트 건물이 아니라는 것은 이제 상식 수준이니까.
잘리고 상처 입은 숲과 그 안의 생명체들에게 편지를 쓴다. “미안합니다, 좋아한다고 하면서 정작 훼손당하고 상처 입을 때 지켜주지 못해서. 아쉬워요, 세상 흐름을 미리 읽고 대처하지 못해서. 안타깝습니다, 잘못된 결정에 분연히 일어나 당신을 구할 막강한 힘을 갖추지 못해서. 그러나 소망합니다. 더불어 사는 사회의 반듯함이 끝내 숲을 지켜주기를.”
오늘따라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자 긴 둥치가 훌쩍 드러나 버린 나무들이 더 심하게 흔들린다, 헐렁해져 버린 숲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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