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전 한남대학교 사회문화대학원장 |
한 1년 그렇게 했나? 그 제례는 슬그머니 사라졌다. 온 국민이 꼭두각시였던 시절이다. 또 영화관에서 영화가 시작되기 전 애국가와 함께 펼쳐지는 영상에 을숙도 위로 새 떼가 날아가는 장면이 있었다. 평화로운 대한민국을 표하려 삽입한 장면일 터이다.
당시 국가 분위기는 평화와는 저 멀리 있었지만. 시인은 그래서 그 새 떼가 가 어둠과 억압과 부자유의 이 세상을 벗어나려는 동작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애국가 시작되면 억지로 끌려 좌석에서 일어섬 당하는 한 관객은 그 새들을 동작에 자신 마음에 숨겨진, 이 세계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을 얹으려는 순간, 애국가 끝나 다시 좌석에 주저 안을 수밖에 없는 처연한, 힘없는 개인의 절망과 슬픔을 표현했다. 이 시는 발표된 이래로 수많은 문학 애호인들의 입에 회자되었던 시였다.
심지어 시극(詩劇)의 형태로 무대화되기도 했다. 글쟁이의 일로 독재 시대에 투옥도 당하기도 했던 황지우였다. 그가 “우파 시대의 좌파에 속한 인사이므로 총장과 교수 자리에서 쫓겨났다” 라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듯싶다. 명분이야 공금유용과 무단 휴가라고는 하지만. 우습다. 한국종합예술학교는 문교부에 속해 있지 않지만, 세계 어디에 내어 놓아도 좋은 대학이다, 우리의 문광부 관료만 모르지만 말이다. 그 학교 체제도 위협당하고 있단다.
요즈음 우리 사회는 명확한 개념 규정 없이 싫은 사람이면 그저 “좌파!‘라는 말로 매도하고 있다. 프랑스 혁명 이래 사용된 정치학 개념은 별개 아니다. 자유와 평등의 가치가 충돌 할 때 평등에 약간의 가중치를 두는 입장, 그리고 규범의 보존과 변화의 양축에서 변화에 약간의 가중을 두는 입장. 뭐 그런 정도가 그 개념 아닐까. 그런 것이 우리 사회에서는 무슨 공산혁명도당을 지칭하는 말로 쉽게 변질한다. 대체 레드콤플렉스는 우리나라에서 어느 때쯤이나 그 위력을 상실할까? 참으로 어처구니없다.
역사는 나선형으로 발전한다고 했던가?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 후 처음으로 탈권위주의 정부를 갖고 여러 방면에서 자유를 구가했다. 그러나 독일 국민은 미성숙한 정치의식 때문에 그것을 지켜내지 못한 채 히틀러의 파시즘에 농락당했다.
우리나라도 MB정권 이전 10년 동안 비교적 권위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다시 회귀하고 있다. 굳이 파시즘이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겠으나, 역사가 역주행하고 있다는 지적에 동의한다. 그것을 막아주는 것은 깨어있는 국민 의식의 제방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나는 아직 하늘을 치솟는 새 떼에 내 마음을 얹고 싶지 않다. 한예종의 비방하는 사람들의 면모와 그들의 속마음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나로서는 마음이 참으로 씁쓸하다. 욕망을 스스로 제어할 만큼 좀 점잖아 질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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