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일요일 오후, 첫 방문자를 보며 반가워하는 전시담당자 덕에 이번 대전화랑미술제의 상황이 어떠했는지를 단번에 짐작할 수 있었다. 일반 시민들은 대전화랑미술제가 어떤 행사인지도 모르고 있을뿐더러 관심조차 없는 것 같다는 담당자의 허탈한 말이 적지 않게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이런 때 일수록 화랑들 스스로 미술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한 어떤 자구책이나 고민이 있어야하지 않을까 하는 안타까움도 앞섰다.
지금 세계는 자타가 공인하는 명실상부한 미술관이나 박물관조차 경제 불황의 여파를 이겨내기 위해 몸살을 앓고 있다. 기부금이 줄어 운영난에 부닥치자 미술관은 직원감원에 들어갔고 임금삭감이나 이미 예정되어있던 전시도 연기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경영난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술관의 문턱을 낮추고 시민들에게 다가가고자 톡톡 튀는 다양한 전시들도 내놓고 있다. 세계미술시장이 팽창일로를 달리던 때에는 감히 생각지도 않았던 과감한 자세 낮추기라고나 할까! 뉴욕 브루클린의 애틀랜틱 애비뉴역에서는 지난 2월부터 3개월간 명작 미술전시를 열고, 뉴욕 최고의 현대미술관인 ‘모마(MOMA)’의 소장품 가운데 유명한 작품을 골라서 같은 크기의 이미지로 인쇄하여 역사(驛舍) 곳곳에 붙이는 전시를 벌였다.
그림 옆에는 작가와 작품에 대한 안내를 설치하고, 공중전화기를 들면 작품설명도 들을 수 있게 했으며, 미술관 티켓도 무료로 나눠주는 등 세계최고의 현대미술관이라는 자존심을 버리고 앉아서 관람객을 받는 수동적인 마케팅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홍보 전략으로 그야말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조건 손님을 불러들인다는 적극적인 대책을 구사하기에 여념이 없다. 어떤 설문조사의 결과는 미국의 비영리 전시 공간 중 10% 가량이 내년까지 문을 닫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굴지의 미술관과 박물관들은 관객들에게 미술관이 ‘일단 와서 즐길 수 있는 곳’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 하고 있다.
국내 미술계 역시 암울한 상황에 놓인 것은 매 한가지이다. 공공 미술관뿐만 아니라 사설화랑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극복책을 모색하며 어떻게든 이 지루하고 힘든 시기를 벗어나기 위해 각가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아트페어와 비엔날레의 중간성격을 지닌 블루닷아시아라는 행사를 기획하고, 블루칩으로 손꼽히는 작가들을 발굴해 낸 아트페어들도 눈에 띤다. 그런데 대전지역의 상황은 어떠한가?
우리 지역에서도 몇 가지 두드러지지는 않되 꾸준한 노력들도 보인다. 매주 토요일 대전갤러리 앞에서는 몇몇 젊은 작가들의 아트마켓도 이루어지고 있고 미술작품 경매도 이루어진 바 있으며, 시립미술관 앞에서는 초상화거리가 운영되기도 한다. 물론 미술시장에 영향을 줄 정도의 큰 행사들은 아니지만 미술인들이 꾸준하게 대중 앞에서 활동하는 좋은 사례로 남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작은 민간의 노력들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이를 지원하고 격려해야 할 지자체의 움직임은 미미하기 그지없다.
기업들이 어려운 때라 메세나 운동을 활발하게 벌이기 어려운 때 인만큼 공적 기관이 나서 미술시장과 미술인들에게 시원한 소나기를 뿌리듯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대전시립미술관을 비롯한 공공 미술관들도 공과 민이라는 이분법적 구도에서 벗어나 사설화랑들과 공생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미술시장과 미술계의 활성화는 화랑과 미술인들만이 노력해서 해결될 수 있는 정도의 한계를 지나친지 오래다. 그만큼 공공 기관의 지원이라는 다량의 수혈이 절실한 때다.
대전화랑미술제도 이제 미술애호가들뿐만 아니라 대전 시민 전체가 즐길 수 있는 축제가 되었으면 한다. 서울아트페어나 광주비엔날레에 관람객들이 모여드는 것을 부럽기만 한 남의 동네일정도로 치부하지 말고 대전미술계도 이제 자신의 이름으로 시민들과 함께 할 큰 잔치를 벌였으면 하는 것이다. 기사(饑死) 직전의 대전미술계를 위해 어떤 일을 다 함께 해야 할지 대전시와 공적기관 그리고 사회단체들의 관심과 지원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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