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란은 도자기 전쟁... 日, 조선의 예술을 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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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도요산책> 5.임진왜란과 조선도공들

  • 승인 2009-11-26 10:07
  • 신문게재 2009-06-09 12면
  • 안영진 중도일보 前 주필안영진 중도일보 前 주필
조선도공들이 일궈낸 ‘사츠마요’는 ‘시바료타로(司馬遼太郞)’의 소설로 더욱 유명해졌다. 1923년생인 그는 오사카 외국어학교 몽고어과를 나와 1960년 ‘나오키(直木賞)’을 받은 바 있다. 또 66년엔 ‘國盜이야기’, ‘龍馬는 간다’로 ‘기쿠치(菊池寬)’상까지 수상했다.

또 72년에는 ‘요시카와(吉川英治)문학상’을 받았으며 역사소설로 양명한 그는 32권의 소설집을 갖고 있다. 그의 소설 ‘고향을 어찌잊으리까’는 ‘사츠마’도요와 심수관 가계(家系)를 다룬 작품이다. 심수관씨 말을 들어보면 ‘시바’의 소설내용과 일치한다. 그러니 뛰어난 실록소설인 것이다.

▲ 도공마을 용문사 전경
▲ 도공마을 용문사 전경
그 소설 속으로 들어가 보자. 임진왜란을 ‘도자기전쟁’이라 부르며 ‘도요토미(豊臣秀吉)’가 그 중심에 떠오른다. ‘분로쿠(文綠)게이죠(慶長)’ 전쟁…. 이를 ‘도요토미’의 침략근성에서 비롯한 것이라 규정하지만 이면엔 기막힌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

천하통일을 했음에도 저항세력이 들끓어 이를 잠재우기 위해 외정(外征)전략을 썼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내부 결속과 반항세력을 잠재우기 위한 고도의 작전이었다. 그래서 ‘역사란 이성(理性)의 간지(奸智)’라 말하는지도 모른다. 외정을 부추긴 자는 놀랍게도 외국이었다.

일본과 ‘무기거래(조총)를 해온 포르투칼 상인이 그 장본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 결과 한국도공과 인쇄, 기술자를 닥치는대로 납치해갔다. 그래서 5~6만명의 양민과 유학자, 활판(活版)기술자, 도공들이 포함되었다. 어떻든 일본도요 시조는 조선도공들이다.

▲조선도공은 일본의 도조(陶祖)

일본 도요의 양대 산맥하면 전라도 남원에서 납치된 심당길 가문 즉 ‘사츠마요(窯)’와 공주 계룡산 입구 학봉리에서 끌려간 ‘이참평’이 일궈낸 ‘아리타’를 꼽는다. 조선도공들이 개설한 가마는 여러 곳에 있다. 예를 들면 호소카와(細川) 땅의 ‘아가노야키(上野燒)’, 구로타(黑川)의 ‘다카도리야키(高取燎)’ 시마즈(島津)의 ‘사츠마(薩摩燒)’구이가 이에 해당한다.

이들 조선도공들은 일본도요에 혁명적 과업을 이뤄낸 건 바로 이참평이다. 그는 처음엔 ‘가네가에삼베(金江三兵衛)’라 했다가 훗날 ‘가키우에몽(?右衛門)’으로 개명을 하게 된다. 현재 ‘아리타(有田)’에선 그를 도신(陶神)으로 모시고 있는 전설적 인물이다.

처음엔 도자기를 굽기 위해 흙을 찾아헤매다 ‘가미시라가와(上白川)’ ‘뎅구(天狗)’ 계곡에서 태토(胎土)를 발견 그곳에 가마를 일구고 도자기를 구워냈다. 각종 사료를 종합해 볼 때 그 시기는 1616(元和 2년)으로 추정된다. 이에 대해 이설이 없지 않으나 여러 고요(古窯)를 조사한 결과 6개의 승염식(乘炎式)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17세기 초의 일이었다. ‘아리타’에선 ‘청화백자’를 구워내어 수출산업에 크게 이바지했다. 그것은 ‘모모야마(挑山)’에서 ‘에토(江戶)’로 넘어가는 시기를 말한다. 그러나 ‘나베지마’ 사료(史料)에는 조선도공 이전에 일본인이 ‘덴구’ 계곡에 가마를 설치, ‘낭킨야키(南京燒)’를 생산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현지에선 ‘아리타’요는 ‘이참평’이 시조라 믿고 있다.

‘이마리야키’도 사료비판과 고고학적 조사라는 두 갈래 측면에서 아직은 정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 거듭 말해서 초창기 ‘이마리야키’의 양식과 원형이 언제 어떻게 수용, 독자적인 작품을 냈는지 미술사적 고찰은 미완(未完)의 장으로 남아 있다.

도요의 효시는 중국 상서성 ‘경덕요지(景德鎭)’로 ‘청화백자’를 구워낸 건 원나라(元) 후기인 14세기라 한다. 이후 경덕요는 명, 청(明淸)시대에 걸쳐 청화를 수출하기에 이르렀다. 남빛 무늬의 그 찬란한 청화는 조선, 베트남, 이란, 터키, 이집트, 네덜란드 등에 큰 영향을 끼쳤다. 여기서 일본 자기는 수출의 총아로 한 몫을 하게 된다.

▲남원성과 심당길

심수관씨는 먼 옛 조상이야기는 즐기질 않는다. ‘청송심씨’라는 것 이외엔…. 입에 올리는 건 임진란 당시 남원성에서 잡혀와 큐슈(九州)남단 ‘가고지마’에 표착한 14대조 심당길부터 역사풀이는 시작된다. 중국의 도요나 유럽 것에 앞서 ‘사츠마요’ 설명이 더 시급하고 절실하기 때문일 것이다.

‘고향난망(故鄕難忘)’이란 표현도 관향 ‘청송’이 아니라 남원성(南原城)을 지칭하는 말이다. 심씨 설명과 ‘시바’의 소설에 나오는 남원을 찾아가 보자. 남원성 동쪽에는 ‘운봉오령’과 남으로는 ‘삼랑대강’이 흐르고 북쪽에는 ‘노령산맥’이 하늘을 찌른다. ‘임진왜란’을 일인들은 고려진(高麗陣 또는 文錄, 慶長)이라 부른다.

▲ 옛 흔적을 말해주는 사츠마요 가마터
▲ 옛 흔적을 말해주는 사츠마요 가마터
그때 조선 도독(都督) 유정은 본영을 성주에서 남원으로 옮겼다. 남원은 교통의 요충으로 전라도와 경상도 군대를 지휘하기 편리한 곳이라고 명나라 기록에도 나와 있다. 왜군 재침 때 명나라 군대는 전라도 수비의 요새로 남원성을 선정, 파손된 부분을 수리하고 성벽을 높이는 한편 성문에 대포삼좌(三座)를 배치했다.

― ‘적(賊)이 진군하여 남원성을 에워싸다’라고 조선 ‘징비록’은 밝히고 있다. 왜군은 ‘게이죠’ 2년(1587년 8월 1일) 공성루(攻城 樓)를 짜 올린 다음 성벽을 향해 공격을 개시 15일에는 남원성내 일각에 돌입했다.

― 왜군 드디어 성을 유린, 성내가 크게 혼란하다.(징비록) 한국 측 무장 김효의는 한발 앞서 남문밖 양마장에서 적을 방어하고 있었으나 남원성이 함락되었다는 급보에 성안으로 달려오자 이미 명나라 군대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김효의 크게 놀라 북문에 이르니 성문은 열린 채 명나라 군대는 조선군을 버리고 도망치고 있었다. 이때 조선은 의용군을 편성 ‘곽재우’가 조선 전통의 전법에 따라 남원 부근 창녕 ‘화왕산성’에 은거 농성을 했지만 왜군이 이를 감지 못하고 지나치는 통에 격돌은 없었다.

‘사츠마’도공들의 선조는 남원성에서 크게 분전한 것으로 전해오지만 구체적 내용은 확인된 것이 없다.

▲이순신 대승을 거두다

2차 침공(慶長) 때 도요토미 사망을 하자 왜군의 사기는 크게 꺾여 강화(講話)가 성립되었다. 10월 25일, 그간 해상에 머물던 왜군이 순천성(順天城)에 주둔한 고니시(小西行長)와 함류하려던 ‘시마즈(島津)’군이 노량해상에서 이순신에게 크게 패했다.

― 왜(倭) 원래 수전(水戰)에 익숙치 못해 많은 군선이 소침되어 그 불길은 적벽과 흡사하도다. 배를 버리고 언덕에 오르는 자 있으나 아(我) 육군에 추격되어 다시 해구(海口)로 나오다 양로(兩路)를 협공 당해 익사하는 자 만(萬)이 넘도다. ― 명나라 문헌에 기록된 내용이다.

우리 측 기록은 어떠한가 ― 대낮 적군 크게 파하며, 아군 추격에 적선 200여 척을 불사르고 물에 빠진 자 부지기수요, ‘시마즈’군은 50여척으로 간신히 탈출하다 ― (징비록). 이에 대한 ‘시마츠’ 기록도 거의 같다. 그들이 ‘가라지마’(唐島)기지로 귀환했을 때 선체는 파손되고 선체의 양현(兩舷)에는 수없이 많은 화살이 꽂혀 마치 ‘고슴도치’ 같았다고 했다.

이때 왜군이 다투어 철수하는 바람에 서로 교신할 겨를이 없었다. 이때 도공들의 처지는 어떠했겠는가. 4척의 배에 수백명의 도공을 분승시켰는데 어느 군단 지휘 하에 속했는지 알려진 바가 없다. 이 점에 대해 심수관씨는 어찌 되어 ‘사츠마’에 40여명 도공만이 표착했는지 모른다고 했다.

왜군은 하카다(博多) 만에 귀환했는데 유독 심당길 일파 남원성 포로들만 큐슈남단 ‘가고지마’에 표착한 것이다. 풍랑에 의해 분산되었는지 아니면 ‘나베지마’와 ‘시마츠’, ‘가토’ 등 적장들의 사전협의에 의한 것인지 모른다는 이야기다.

왜군이 퇴각할 때 배가 텅텅 비어 조선도공과 인쇄기술자, 약탈문화재를 실어 선박운행을 도왔다는 설이 있다. 어떻든 일부 도공들은 가까운 ‘가라즈(唐津)’나 ‘나고야(名護屋)’, ‘하카다(博多)’ 아닌 동지나해를 거쳐 큐슈 남단으로 표착했다고 전해온다. 하지만 이 전설엔 설득력이 없다. 풍랑을 만나 남쪽으로 표류했다는 게 바른 추측일 것이다.

그들 도공은 처음에 ‘시마바라’에 표착했다. 불러도 메아리 없는 황량한 해변, 그러니 ‘가고지마’라는 지명을 알 까닭이 있었겠는가. 어느 누구를 찾는 것도 아니고 가야할 방향도 모른 채 한복 차림 흰 옷자락을 휘날리며 그저 걸었을 뿐이다. 그때 풍랑에 시달려 신음하던 일행 중 몇 사람이 도중에 쓰러졌다.

그들은 그 유해를 해변 언덕 소나무 밑에 묻고 명복을 빌었다. 이들은 오늘의 ‘구시키노시(串木野市)’와 ‘이치기마치(市來町)’를 거쳐 ‘나에시로가와(苗代川)에 이르러 가마를 열었다. 그들 17성(姓)은 申, 朴, 卞, 林, 鄭, 車, 姜, 陳, 崔, 盧, 沈, 金, 白, 丁, 河, 朱 등이다. 처음엔 ‘구시키노’에 가마를 열었으나 원주민의 방해로 ‘나에시로가와(苗代川)’로 자리를 옮겼다.

이 ‘나에시로가와(苗=나에)’란 우리말의 ‘내’라고 했다. 이 마을은 지금도 대나무 숲에 쌓여 있다. 이때부터 도공들은 가시밭길을 걸어야 했다. 이조백자, 분청사기를 구어내라는 추상 같은 영주의 명령과 인근 주민들의 박해를 견디며 전전긍긍했던 도공들의 신세는 참으로 비참한 것이었다.

자기를 굽는데 필수적인 것은 ① 흙(태토) ② 불 ③ 유약 같은 게 있어야 한다. 전란 때 일부 도공들은 조선 흙을 가지고 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참평(有田)과 심당길 일행(사츠마)은 흙을 찾으려 꽤나 애를 썼다는 기록이 나와 있다. 그렇게 고생을 한 도공들은 오늘에 와서 일본의 도조(陶祖) 또는 도신(陶神)으로 추앙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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