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승안 나사렛대 총장 |
서울에서 그 분을 애도하는 청년들이 “원망”의 함성을 외칠 때, 또 다른 청년들인 전경들은 뜨거운 태양 빛 아래 하루 온종일 그 “원망”의 소리를 길거리에 앉아서 “원망”스럽게 듣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로 보이는 젊은 외국인들은 카메라로 이러한 모습들을 흥미롭게 담고 있는 모습을 이틀 전에 서울 시청 앞에서 보고 있는 저 자신 속에도 “원망”스러운 마음이 도사리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고인의 뜻을 따라 “원망”이 아니라 감사와 격려를 주고받는 일반 백성과 정치 지도자들이 될 수 있을까요? 힘겹게 벌은 돈을 고향의 가난한 부모와 어린 동생들에게 보낸 노동자들이 결혼할 때 감사와 축복의 노래로 불리어진 “상록수”가 원래의 취지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 온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 비바람과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현실을 홀로 힘겹게 맞서면서도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을 때, 그 사람은 “온누리”를 “푸르게”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오프라, 오바마, 마틴 루터 킹과 같은 인물이 그렇지 않습니까? 세 명의 흑인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참으로 가난하게 태어나서 좌절하여 쓰러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온누리를 푸르게” 변화시키는 인물이 된 비결은 무엇입니까? “원망”의 화살을 쏘지 않았습니다. 세상을 원망하지 않고 현실을 직시하면서 이상을 향하여 꾸준하게 정진하였습니다.
마틴 루터 킹 3세가 한 말입니다. 우리 흑인들이 백인들에 의하여 무시당하고 있습니다. 그들만큼 공부하지 못하였습니다. 때문에 대부분의 우리 흑인은 청소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원망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나처럼 청소를 잘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누가 있는가라는 자부심을 가집시다. 원망을 부추키는 거짓 지도자가 아니라 원망을 극복하는 희망을 불어넣어주는 참 지도자가 있었기 때문에 흑인 대통령 탄생이 가능하게 된 것 아닙니까?
원망과 저주를 퍼부어도 시원치 않은 환경에 처하면서도 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기 때문에 하인즈 워드 선수가 될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오늘의 우리 문제는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원망의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가치관을 제시하는 지도자의 부재가 문제입니다. 오늘의 우리 문제는 원망의 잠금쇠로는 해결할 수 없고, 희망의 열쇠만이 평화와 통합의 미래를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습니다. 오늘의 상황이 참으로 힘겨워도 ”온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는 희망을 우리 함께 노래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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