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순달 한국과학기술대학 초대학장 |
우리로서는 무척 부럽고 질투마저 나는 일이다. 이러한 해외소식이 올 때마다, 우리도 노벨상을 타자며 후원회를 만들기도 하고, 발표회를 하는 등 우리의 의지와 희망을 불태운다. 흥분한 나머지 우리도 언제까지 노벨상을 타게 하겠다는 결의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다짐보다는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분위기와 성과를 낼 수 있는 시설투자가 더욱 중요하다. 아울러 끈질기게 도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20세기의 천재로 알려진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그의 자서전에서 “남자친구들을 만나면 무익한 잡담으로 시간을 낭비하지만 여자 친구와는 피아노 반주에 바이올린 연주를 즐겨 감정을 순화할 수 있었다”고 적었다. 그는 암기식 공부가 싫어서 학교공부에는 별로 흥미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독일을 떠나 스위스의 취리히에 있는 ETH 기술고등학교에서 공부하기로 하고 입학시험을 쳤으나 낙방했다.
그때 아인슈타인의 논술답안을 채점하던 교사가 16세 소년의 답안이라고는 상상 할 수없는 비범한 내용이 적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을 불러 어학과 역사 등을 더 공부해서 다음해에 재수하도록 권유했다. 그때 그 논술내용이 상대성이론의 기초 개념이었다는 것이다. 진주를 가려내어 보배로 만드는 안목이 부럽기만 하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그는 노벨상을 받기도 하고 상대성이론을 위시해 수많은 물리학적 원리와 이론을 새롭게 발명했다.
어느 날 기자가 그를 찾아가 “얼마나 머리가 좋기에 그와 같은 업적을 이룰 수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는 대답하기를, 머리가 좋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고, 남과 다른 점이 있다면 I may be ‘inquisitive’라고 말했다. 즉 자기는 문제가 있으면 그 근본을 밝혀낼 때까지 ‘물고 늘어진다’는 것이었다. 끊임없는 노력이 바로 명석한 두뇌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사안에 대해 쉽게 포기하는 것은 발명과는 상극되는 것이다. 끝없는 노력과 인내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은 평범한 진리이다. 그런데 굳이 노벨상을 목표로 하는 게 아니라 하더라도 모름지기 과학적 업적이란 아파트를 짓듯이 빨리 서두른다고 이룰 수는 없다. 1983년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의 벨연구소를 방문한 적이 있다. 우리를 안내한 사람은 1978년에 노벨물리학상을 탄 아모 펜지아스(Amo Penzias) 박사였다.
그가 우리 일행을 연구소 소장실로 안내했다. 그 소장은 23년째 소장직을 맡고 있다고 했다. 왜 그렇게 오래하느냐고 내가 묻자 그는 아무도 소장직을 원치 않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자기가 맡고 있다고 했다. 연구 전문가는 연구에 몰두하고 연구소 경영은 전문경영인이 한다는 것이다. 서로 연구소 소장을 하겠다고 경쟁하는 우리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펜지아스 박사는 사람이 없는 연구실로 우리를 안내했다. 중국계 연구원이 지난 12년간 단일 주파수 레이저 연구에 몰두한 끝에 드디어 성공해서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뉴욕으로 출장 갔다고 했다. 성공의 기약도 없이 결과의 중요성을 고려해 장기간의 연구를 지속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것이 곧 미국의 힘이라고 자랑했다.
연구실 운영비를 마련하느라 편법적인 수단을 불러야하고 영수증 챙기기에 바빠야 하고 연구비 얻으려 출장 다니느라 도로에서 시간 보내야 하고 노후생활 걱정해야 하는 분위기에서는 좋은 연구결과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연구결과를 독촉하다 보니 진전 상태를 과장해서 보고하거나 심지어는 허위보고를 해야 하는 비관적인 양심을 양성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외국 유명대학 교수들은 SCI란 말은 들어 본 적도 없는 사람이 많다는데 우리는 논문의 질보다 게재 편수로 개인을 평가한다. 이것은 노벨상 평가방법과는 정반대다.
우리나라가 그토록 간절히 바라는 노벨상을 받는 길은 결코 한강의 기적을 이뤄내는 데 기여한 빨리빨리 방식으로는 안 되는 게 분명하다. 지금부터라도 빨리빨리 대신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며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이루어져야 노벨상은 우리의 것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노벨상 수상 소식이 하루빨리 전해지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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