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올해도 국가적으로 큰일이 없었다면 늘 그랬듯이 5월 말 즈음에 진행되었을 몇몇 대학들의 축제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인해 취소되거나 연기되었다. 어느 날 아침, 갑작스럽게 공중파 방송들은 전 대통령의 죽음을 알려왔고 한동안 전 국민들을 황망함과 깊은 애도의 감정에서 헤어나기 어렵게 했다. 역사상 유례없었던 추모의 물결은 국민장으로 치러졌던 영결식 내내 국민들을 무기력증과 우울증에 시달리게도 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전국적으로 대학축제를 비롯한 모든 행사일정들이 속속들이 취소되거나 다음 학기로 연기되었던 것이다.
근래 대학 축제 때만 되면 대학가는 흔히 잘나가는 연예인 스타들을 경쟁하듯 데려오기에 안간힘을 쓰고 우리대학 축제 때 누가 온다는 홍보가 대학축제의 성패를 가름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들마다 거의 유사한 프로그램이 기획되고 매년 되풀이되어지고 있다.
사실 70년대만 해도 축제는 학술제와 예술제가 병행되고, 통기타 가수와 함께 하는 음악회 등 소박한 낭만 속에서 과연 우리의 대학축제가 지녀야 할 정체성이 무엇일까 하는 고민이 충분히 엿 보였던 시기였다. 그 뒤 80년 5월 이후 대학축제는 대동제로 만들어졌고, 현실을 날카롭게 진단하는 학술제가 많이 개최되었으며, 쌍쌍파티 대신 탈춤반이나 풍물반 동아리들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축제 마지막 날이면 으레 크고 작은 시위가 벌어져 대학마다 학생들과 전경들이 대치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90년대는 그야말로 문화의 시대, 다양성의 시대라 일컬어지듯 대학축제의 상황도 급속도로 변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시대의 현실을 자성하는 강연회나 학술행사는 점차 보기 어려워지고 소비적 이벤트의 물결 속에서 오직 ‘유희’라는 기준만으로 모든 행사의 가치가 매겨지는 게 오늘날의 실태이다.
학과마다 주점을 열고, 신세대 스타 가수들의 치열한 유치 등으로 유지되는 대학축제의 현장은 각 기업체의 상품홍보의 경연장을 방불케 하고 수익성을 바라보고 이루어지는 상행위가 이벤트라는 명분으로 버젓이 이루어지는 등 어느 대학이나 비슷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대학만이 갖는 축제의 독특하고 개성 있는 사례를 찾아본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다.
대학인들만이 지닐 수 있는 지성과 감성으로 보다 생산적인 대학축제의 현장을 기대해 본다는 것은 과연 어려운 일일까? 시대의 변모와 함께 변화하는 대학문화를 인정하면서도 얼마든지 긍정적이고 다양한 대학축제의 모습을 생각할 수 있을 텐데 왜 우리의 대학들은 기성세대의 문화를 그대로 흉내 내고 있는 것일까! 지나친 현실비판이나 일회적인 유희성, 소비적 형태의 극단으로 치닫지 않아도 대학생에 어울리는 생산적인 축제문화가 가능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축제기간을 통해 보다 실질적이고 실천적인 사회적 대응력을 키워낼 수 있는 생산적인 계기를 마련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각 학과마다 실질적인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대학 울타리 안에서 자신들끼리 먹고 즐기는 자축의 장이 아닌 한 지역 내에서 최고의 교육기관으로서 지역문화를 선도하고 확장해 갈 수 있도록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프로그램 기획은 지역의 대학으로서 필요한 과제일 것이다.
학과 수업보다 축제에 더 큰 관심을 가져왔던 학생들은 이번 대학축제 연기로 말미암아 유명 스타와의 만남의 기회가 사라져 아쉽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축제가 취소되거나 미루어지는 계기를 통해 대학축제준비에 여념이 없던 학생들은 대학 축제문화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자성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다음 학기나 내년에 있을 새로운 형태의 축제에 대한 자숙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음을 오히려 기뻐해야할지도 모른다.
축제가 일시적인 일탈의 시간성과 공간성을 갖는 가운데에서도 가장 중요한 목적은 축제가 끝난 이후 더 큰 생명의 활력과 창조력을 배태시키는데 있음을 잊지 않는다면 청춘의 폭발적인 에너지를 어떻게 승화시켜야 할지, 또한 지성인으로서 어떠한 생각과 자세로 축제를 이루어내야 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전국 방방곡곡이 축제 이벤트로 일 년 내내 시끌벅적한 시대에 최소한 대학은 자신의 정체성에 어울리는 축제의 꼴을 찾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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