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건영 대전어은중학교 교감 |
점심 후에 간 곳은 참소리 박물관.
설립자인 손성목 관장이 세계 60여 개 나라에서 수집한 축음기, 뮤직박스, 라디오, TV 그리고 발명왕 에디슨의 발명품 등 5천 여 점이 전시되어 있는 사설 박물관이다. 이곳의 특징은 각 전시실마다 안내원이 배치되어 있어 관람자를 통제하고 전시물에 대해 교육적으로 간략히 설명한 뒤에 관람을 시키는 것이었다.
다음은 오죽헌과 강릉시립박물관.
학교에서 사전 교육을 철저히 시켰건만, 대다수의 학생들이 수첩을 들고 뭐 하나 적거나 묻기는커녕 그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장난을 치는 데만 열중이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수첩을 들고 다니며 열심히 적는 학생들이 제법 있었는데, 오늘은 두서 명도 보기 어려우니 씁쓸한 심정으로 퇴색된 수학여행의 의미를 되새겨 보았다. 그런데 수첩을 든 다른 학교 남학생이 어제각(御製閣)이 무슨 뜻이냐고 묻는 게 아닌가. 임금의 명을 받들어 지은 집이라고 풀이해 주고는 그 유래를 덧붙여 설명해 주었다. 녀석의 얼굴이 환해지는 것을 보고 나는 무슨 착한 일을 한 아이처럼 기뻤다.
제 2일(5. 19. 화. 맑음), 오전에 비선대를 다녀왔고, 오후에는 고성에 있는 통일전망대로 갔다. 도로 옆 해안선을 따라 설치된 철조망과 유사시 적군의 탱크를 저지하기 위해 도로 곳곳에 설치한 장애물들에 대한 설명을 하는데도 그저 잡담에만 열중인 아이들을 보면서, 문득 내 스스로가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저녁 후에는 학년부장인 박 선생님의 제안에 따라, 10시까지 담임선생님들은 자기 반 학생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다. 자비로 간식까지 준비해 나눠 주고는, 피곤함도 잊은 채 못처럼 화목한 분위기 속에서 보람된 시간을 가졌다고 흐뭇해하시는 선생님들, 역시 ‘우리 선생님들이시다!’
그런데, 첫날 저녁부터 끝날 점심까지 줄곧 학생들과 한 식당에서 같이 밥을 먹었고, 잠도 저희들과 똑같은 방에서 잤는데, 뭐 특별한 게 있는가 봐 힐끔거리고 질문하는 걸 보면서, 우리가 왜 이렇게 불신을 받아야 하는지, 아이들의 그런 태도에 대해 실망과 자괴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제 3일(5.20. 수. 맑음), 아침 후 마지막 일정인 낙산사로 갔다.
2005년 4월 6일 산불로 타버린 낙산사. 무사히 완공되기를 빌면서, 점심 후 대전으로 향했다. 예정보다 이른 시간인 16시쯤 학교에 도착한다는 말을 듣고 아이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 “선생님 일찍 가면 학원에 가야 돼요. 그러니까 학원 좀 안 가게 늦게 가면 안 되나요?” 허! 말 안 들어 얄밉던 녀석들인데도 그저 안쓰러운 것은 왜일까.
2박 3일 동안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해 주신 여러 선생님들, 그리고 버스 기사님들께도 감사를 드리면서, 집에 가는 버스에 올라서야 나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하지만 자리에 앉자마자 밀려오는 피로감에 꾸벅꾸벅 졸다가 하마터면 내릴 곳을 지나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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