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상현 조이소아병원 원장 |
이쯤 되면 고대의 황제가 부럽지 않은 시대가 아닌가. 그런데 얼마 전 TV 다큐멘터리에서 60에 퇴직을 하는 어느 노신사가 막걸리 집에서 빈대떡에 술 한 잔을 마시며 이제부터 앞으로 살아갈 20년을 걱정하고 있었다. 오래 사는 게 축복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가정과 사회의 짐이 되는 현실을 보며 그 노신사는 오래살기를 바라던 것이 오래 살게 되니 나한테는 큰 재앙인 것 같다고 하였다.
어려운 시절 건설의 역군으로, 한 가정의 가장으로, 노부모의 자식으로 열심히 일에만 매달려 오늘에 이르렀건만 남은 생을 어떻게 정리하여야 할지를 모르는 바보 같은 노인으로 남게 된 것이다.
자식이 있어도 자식에게 의지하기는커녕 오히려 자식을 돌보아야 하는 것이 현실이 되었고,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갖고자 하나 즐거운 시간을 즐길만한 여유가 있는 친구들이 별로 없고, 일을 하고자 하나 일자리는 더욱 없으며, 육신이 이미 병들고 지쳐서 초라한 모습으로 사회의 짐이 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사회라고 이들을 지켜줄만한 여유가 어디 있는가. 국력이 커지고 경제가 풍요로워 졌다고 하지만 너무 바쁜 이 세상은 이들에게 여유를 돌릴만한 돈도 없고, 관심도 없고, 이들의 존재도 잊어가고 있다.
이미 30~40대의 대부분은 노후를 자기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하였으며 이들의 많은 수는 자기 부모에게 생활비를 전혀 드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 자연 시대의 희생양은 50~70대인 것 같다. 이들은 자신을 위해 준비한 것이 별로 없어, 돈도 많지 않고, 취미 생활을 해본 적도 없고, 시간을 자기를 위해 쓸 줄 아는 훈련도 되어 있지 않아서 나머지 인생은 그저 헛된 시간만 축내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시간은 돈이다.
헛되이 세월을 보내지 마라, 과거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등등, 시간의 고귀함을 일깨우는 말들이 많은 것은 그만큼 시간이 아쉽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애써서 얻은 장수의 기회가 쓸모없는 재앙의 시간이 되어서야 쓰겠는가. 이 노신사의 말을 들으며 남은 시간들을 어떻게 설계하고, 어떻게 실천하며, 어떻게 평가 받아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어떻게 해야 오래 사는 것이 결코 재앙이 아니고 축복이 될 것인가를 모두 심사숙고하고 자신만의 길을 깨달아야하는 시간이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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