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겸]서글픔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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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겸]서글픔에 대하여

[월요아침]김중겸 전 충남지방경찰청장

  • 승인 2009-11-26 10:07
  • 신문게재 2009-06-01 20면
  • 김중겸 전 충남지방경찰청장김중겸 전 충남지방경찰청장
육군 사병시절을 보낸 전방이라는 곳. 서른 하고도 넉 달을 지냈다. 추웠다. 삼사월 지나 오월도 중순께 되어서야 봄기운 돌았다. 그때쯤 주위가 온통 붉게 물들었다.

▲ 김중겸 전 충남지방경찰청장
▲ 김중겸 전 충남지방경찰청장
산은 북쪽을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왜 그리도 북향 산이 많았는가. 기슭은 적색이었다. 수채화 같다면 아련한 느낌이었을 터. 색연필로 진하게 칠한 듯 했다. 오히려 슬픔이 배어났다.

그건 꽃무리였다. 행군할 때는 겨를 없었던 탓이었을까. 몰랐다. 포켓에 휴가증 담고 나서면 눈에 들어 왔다. 부대 떠나 남쪽으로 가는 버스 유리창 너머로는 보였다. 철쭉이었다. 일명 척촉화. 옛적 어느 선비가 붙인 꽃 이름이련가. 난해하다. 의외로 뜻은 오묘하다. 주저하고 주저하는 꽃. 머뭇거리고 머뭇거리는 꽃. 그 양반의 작명 의도를 알 듯하다.

한 번만이라도 단호하게 살아 본 적 있는가. 한 차례라도 확신 속에서 결단해 봤는가. 삶에 있어서 그런 고뇌 없는 시절이 있었는가. 누가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한다. 주저했다. 그리고 머뭇거렸다. 세상에 어디 무엇 하나 정해진 해법 있는가. 정답 없는 인생. 선택하고 결심해야 한다. 결국 손쉬운 방법을 택한다. 편안함이 좋았다.

척촉화의 우리말 이름은 개꽃이다. 봄의 메신저는 노란 개나리. 이어 진달래가 봄이 완연함을 알린다. 참꽃이다. 같은 봄철 같은 꽃. 개와 참으로 나뉜 이유를 모르고 지냈다. 앞과 뒤의 차이다. 비슷한 색깔. 무리지어 피는 모습도 닮았다. 둘 다 아름답다. 우열 가리기 어렵다. 그런데도 하나는 먼저 피어 참꽃. 다른 하나는 나중에 피어 개꽃이다.

이제야 깨닫는다. 이만큼 나이 들어서다. 지난날의 허물(前非)에 비추어 고개 끄덕인다. 옳지 않은 일이 눈앞에서 벌어진다. 앞장서서 먼저 나섰느냐고 묻는다면 할 말 없다. 저들이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다. 그래도 할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자세. 도둑질 안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침묵하며 지낸 세월이었다. 말 못하고 행동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

개꽃의 다른 이름은 산객(山客)이다. 산을 찾은 손님. 낭만이 묻어난다. 아! 그래서 그 북향한 산에 그 꽃이 그렇게 많았구나. 어디로부터 와서 거기에 자리 잡았단 말인가. 아마도 이쪽 산객 고향은 서천. 왕래가 자유롭다. 내가 장항 갈 때 가슴에 안겨 동행했다고 믿겨진다. 저쪽 산객은 저 삼팔선 너머가 태어난 땅. 철새에 꽃잎 물려 소식 전했을 거다. 오고 가고 가고 온다. 인생여정. 온다함은 탄생이고 간다함은 소멸. 언제 객이라 여기고 살았는가. 주역이기만을 바라는 한평생이다. 욕심을 조금씩 버려 나간다. 들린다. 주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려고 노력한다. 보인다. 객과 객의 만남. 이어진 존재의 끈을 체감한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셨기에 내가 있다. 이를 알게 되면 사람은 꽃이 된다. 꽃은 그리하여 오늘도 자손이라는 꽃씨를 바람에 실어 보낸다. 윤회 속 주인이자 손님이라는 객이다. 아무렴 어떤가. 꽃은 꽃. 저마다 다르다. 각기 고유의 미를 지녔다. 정원의 장미꽃이면 어떻고 길가 민들레꽃이면 어떤가. 여기 피는 꽃 저기 피는 꽃 어울려야 아름답다.

척촉화 인생은 어떠랴. 누군들 머뭇거리지 않고 살았는가. 개꽃이라 한들 어떠냐. 개 같은 곤궁 속에도 참꽃 피워낼 가능성은 존재한다. 어디 산객으로만 종신하는가. 빈부귀천 따로 있다고 놀더니 다 백수 되어 돌아간다.

그러기에 삶의 풍미는 서글픔이다. 기뻐도 슬퍼도 눈물. 짠맛이다. 간난신고(艱難辛苦)의 기록. 물기어린 삶. 서럽다. 더불어 함께 나누어 보태면 감칠 맛 나는 인생으로 변모. 추락하지 않는다. 공감하며 공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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