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선호 한밭대 인문대학장 |
인터넷이나 드라마, 각종 매스미디어에 이르기 까지 편가르기 실태는 너무 심대하다. 물론 이보다 더 심각한 편가르기 행태의 극치는 결코 고름일 뿐 다름아닌 이념적인 적대행위일 것이다. 지구촌 그 어디에서도 눈 씻고 찾아보아도 찾을 수 없을 철도 지난 지 오래이고 고리타분하기도 이를 데 없는 좌파 우파로 대립각을 세워 원수지간 같이 으르렁 대는 꼴상 사나운 행태 따위가 그것이다.
아름다운 인정이 여지없이 사라지고 나라 발전에 암적일 따름인 이따위 싸움으로 이나라를 쓰러질 이 지경으로 까지 패대기를 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나라의 숨이 끊어지기를 바라지 아니하고서는 도저히 이럴 수는 없는 망나니짓들을 서슴지 않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끝모를 이 짓거리들을 언제 까지고 해대려는 지 정상적인 우리 국민은 정년 미칠 지경에 이르고 있건마는---.
“착한 일은 아무리 작더라도 반드시 하고, 나쁜 일은 아무리 작더라도 결코 해서는 아니된다.” “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은 하늘이 복을 내리고,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은 하늘이 재앙을 내린다”고 고전(古典)은 늘 우리를 깨우쳐 주고 있다. 만왕의 군왕이신 하느님께서 늘 사랑을 말씀하고 계시고, 석가모니 부처님도 자비를, 공자님도 인(仁)을 가르치고, 얼마전 선종하신 작은 예수 고(故) 김수환 추기경님도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며 베풀며 살기를 강조하셨음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안다.
우리 국민의 절반 정도가 그리스도, 부처, 공자의 가르침을 신봉하는 종교를 갖고 있다. 그리고 그 가르침대로 살아가기를 교회에서 사찰에서 집에서 주기적으로 맹약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러하면서 실제의 생활은 이에 반하는 기실 ‘네탓’의 싸움, 편가르기 싸움만을 일삼는 건 결코 온당치가 않은 것이다. 일종의 사기적인 삶의 행태이며 부딘히 죄짓는 삶을 영위해 가는 것이라고 밖에 달리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진솔히 알면서 선한대로 행하지 않고 그에 반하는 노릇은 분명 잘못된 삶의 행태이고 심하게는 죄악을 저지르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우리 겨레는 원래 그악스럽지 않은, 선(善)함이 순백의 순결함 같은 심성으로 결어진 존재들인 점을 자존으로 삼아왔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아름다운 심성의 바탕이 비록 지극히 일부로 친다할 지라도 언제부터 경박하고 조급하고 버럭 화부터 내고 투쟁을 일삼는 인간적이지 못한 성정으로 바뀌었는지 모를 일이고 이런 소망스럽지 아니한 세태로 이어지고 있는지 그저 안타깝기 그지없을 뿐이다.
보고 느끼기에 따라서는 끊임없는 악마의 유혹에 놀아나는 세태 같다는 비관적인 생각을 지울 수 없음 또한 또다른 슬픈 현실인거다. 어찌보면 황망히 생을 접은 가신 님 또한 이런 비극적인 시대, 투쟁으로 일삼는 세태가 빚어낸 희생일 것이다. 치열하게 살다가 떠나신 노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빌며 추모하고자 빈소를 찾는 이들을 네편 내편으로 가려 받아들이고 되돌려 보내는 그 얄궂은 속내와 행태에 이젠 진저리가 난다. 고인 앞에서는 그 누구도 숙연해야 하고 한결같이 슬픔을 나누어야 함이 마땅한 노릇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 노무현이 사랑하는 모임’의 사람들인 일부 ‘노사모’ 회원들이 보여주는 아름답지 못한 모습들은 진정 노무현 전 대통령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또다른 아픔을, 돌아가신 님에게는 더 큰 아픔을 안겨주는 소망스럽지 못한 행위라고 밖에 달리 이해하기 어려운 게 또한 진솔한 견해의 하나다.
민주를 사랑하다 돌아가신 님이 오죽했으면 “미안해 하지 마라, 아무도 원망하지 마라”고 유언으로 당부하셨겠는가! 실로 경건히, 그리고 삼가 옷깃을 새로 여미고 신중히 음미 또 음미하면서 고인의 영면과 명복을 빌 일이다.
이제 슬기로운 우리 대한 국민은 ‘네탓’과 ‘내덕’, 끝없이 이어지는 편가르기에 의한 적대적인 반목과 투쟁의 망령에서 홀연히 벗어나서 한결같이 일치 단결의 모습으로 이 어려운 국가적인 난국의 돌파와 지속적인 발전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 노 전 대통령의 가심을 진정으로 아파하며 위로해드리는 산자들의 진정한 책무가 아닌가 한다.
“아무도 원망하지 마라”는 아름다운 유지를 남기고 떠나신 님께 다시 한 번 삼가 명복을 빌며, 남아 있는 자들이 어떠해야 하는 지를 회한의 심정으로 고해 바치는 진솔한 뜻도 담겨 있음을 밝히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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