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홍주 산행문화연구소장 |
만인산과 식장산 사이 산줄기는 옛날 백제와 신라가 겨룰 때 국경으로 두 나라가 대치하고 있었다. 그래서 식장산과 계족산 사이 산줄기 등성이에는 갈현성 질현성 계족산성 세 성터가 지금도 뚜렷이 남아있다. 계족산성은 잘 복원되어 있기도 하다.
이 세 산성의 규모나 양식 등은 밝혀져 있지만 언제 누구에 의해서 어떤 목적으로 쌓아졌는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삼국사기에 나오는 백화산의 금돌산성이나 양산(영동군 양산면)의 양산가로 미루어 볼 때 이 계족산의 세 산성이 옥천 마성산의 세 성터와 함께 이 산줄기가 백제와 신라의 경계였음이 분명하다.
따라서 이 산줄기를 사이에 두고 양국이 맞서 싸웠거나 그에 대비하여 쌓은 성이었음을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양식으로 보나 출토된 유물로 보아 백제 측이 쌓은 성일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또 식장산은 그 이름의 유래가 백제군이 이 산에 군량(군대 식량)을 보관했다는 데서 밥장산이라 한 것이 식장산 즉 밥을 감추었다는 뜻으로 발전한 것으로 볼 때 위의 추측은 더욱 확실하다.
만인산에는 조선조 태조 이성계의 태실이 있었다. 그 이름조차 태봉재라고 부르는 고개에 태실이 복원되어 있다.
이성계의 출생지인 함흥의 용연에 있었던 이성계의 태가 여기 만인산까지 옮겨와 보관되었던 데는 긴 이야기가 있다.
위의 사실로 볼 때 보ㆍ만ㆍ식ㆍ계 산줄기는 오래전부터 역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그 종주는 그 역사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현재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깊이 되새기는 기회가 된다.
산경표에 의한 산줄기의 체험
300여 년 전 신경준은 ‘산경표’라는 책에서 우리나라의 산줄기를 잘 정리해 놓았다. 요사이 크게 유행하고 있는 종주의 대상으로 ‘백두대간’ ‘금남정맥’이라는 1 대간 1 정간 13 정맥의 분류가 예서 비롯된 것이다.
일본 사람이 만든 ‘산맥’의 개념은 모순이 많아 우리나라의 산줄기의 이름이 곧 ‘대간’ ‘정맥’의 이름으로 바꿔야 할 실정이다.
산경표의 분류 원칙은 산은 물을 가르고, 물은 산을 넘지 못하며 하나의 산에서 물을 건너지 않고 다른 산으로 가는 길은 반드시 하나 가 있다.
보ㆍ만ㆍ식ㆍ계 산줄기는 위 산경표의 원리가 그대로 적용된다. 이 산줄기는 만인산 근처에서 발원한 대전천을 싸고돌며 전혀 개울 하나 건너지 않고 이어져 있다.
또 보문산에서 바로 건너다보이는 식장산까지 직선거리로 정확히 6km에 불과하지만, 보문산에서 만인산을 거쳐 식장산에 가려면 50여 km를 돌아가게 된다.
예를 하나 더 이야기하면 북한산에서 관악산은 바로 한강 건너에 있지만 물을 건너지 않고 북한산에서 관악산에 가려면 무려 1100km를 돌아가야 한다.
그래서 보ㆍ만ㆍ식ㆍ계는 대전천을 싸고도는 산줄기로 보ㆍ만ㆍ식계의 종주는 산경표의 체험이라 할 수 있다.
우리 대전 사람들이 즐겨 찾는 보ㆍ만ㆍ식ㆍ계 종주를 이제까지처럼 애향의 뜻에서 또는 산의 아름다움을 보고자, 산을 좋아하는 뜻에서 종주하는 데 더하여 보ㆍ만ㆍ식ㆍ계를 역사적인 면에서 인식하고 더불어 산경표의 체험으로 삼는다면 보ㆍ만ㆍ식ㆍ계 종주의 뜻이 한발 더 발전되고 더 즐겁고 보람있는 산행이 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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