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율로 연합피부비뇨기과 원장 |
매일 매일의 노력이 없이는 50대중반의 몸매는 망가지기 십상이다. 풀 섶 사이로 밤새 치어놓은 거미줄을 헤치며 산꼭대기까지 오르는데 10분정도, 이미 열대여섯 정도의 부지런하면서도 극성스런 사람들이 음악에 맞추어 자원봉사 에어로빅 강사의 날렵한 몸동작에 무엇인가 해보려는 모습으로 억지를 부리고 있다.
영화의 장면을 보는듯한 느낌도 들지만 한편, 매일매일 노력하는 모습이 존경스럽기도 하다. 이들을 지나쳐 냄새도 향긋한 소나무 숲을 관통하려면 스며드는 향기에 코가 뚫리고 온 몸이 이완되고 있음을 느낀다. 햇살은 솔잎사이로 사선을 이루고 하늘에선 서너 마리의 까치들이 시끄럽게 울면서 유희를 즐기고 있다. 밤에만 울던 뻐꾸기도 지친 듯 뒤늦게 간간이 울어댄다. 그러는 사이에 여러 가지 모습의 사람들이 아무 말 없이 분주히 지나친다.
체육복에 리시버를 끼고 달리는 아저씨, 잡음 때문에 잘 들리지도 않는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고 열심히 걷는 농부 같은 70대 노인, 언제나 선글라스에 색깔 있는 머플러에 챙 넓은 모자, 지팡이까지 곁들인 얼굴하얀 아주머니(새벽 산길 산책에는 왠지 부담스럽고 어울리지 않는) 그리고 애완견을 가슴에 품고 열심히 뛰는 아가씨 등,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새벽을 휘 젓고 있다. 중간의 바위 터에 이르러 멀리 바라보면 아스라이 겹겹의 산들이 한편의 그림 같이 눈에 들어온다. 숲들 사이사이로 보이는 성냥갑을 겹으로 세워 놓은 듯한 아파트 숲이 한편으론 답답해 보이지만, 이 아름다운 숲 속에선 한낮 작품에 불과해 보인다.
지지고 볶아대는 인간의 갖은 애환들을 잠 재웠던 것 같은 어둠이 서서히 물러서고 다시는 오지 않을 새로운 한 날이 시작점에서 잔잔한 도시의 굉음과 함께 꿈틀대기 시작한다. 끙끙대는 조이가 잠시의 일탈 중에 다시 세상의 그림자에 드리워지는 나를 잡아끈다. 시원하고 맑은 공기를 한껏 들이쉬고 가던 길을 재촉한다. 좀 더 지나치자면 오솔길을 따라 갖가지 나무들이 우리를 반겨준다. 누가 심지도 기르지도 않는데 참나무며 이팝나무며 오리나무며 때론 명감나무와 칡넝쿨들이 싱싱하게 어울려 자태를 뽐내고 있다.
신선한 공기와 안정된 심장박동을 가져다주는 신록들은 진정 우리의 동반자며 보금자리다. 얼마 전 타계하신 ‘토지’의 작가 박경리 씨의 유고시집 제목이 머리를 스친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암투병중에도 더 이상의 치료를 거부하고 자연과 함께 말년을 지내면서 남긴 글이다. 아무리 발버둥치고 가지려해도 떠나기에 앞서 가져갈 수 없는 것을 너무 많이 갖고 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일게다. 아내와 손잡고 어제의 기억나는 일들과 아이들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오는 길은 잔잔하고도 진한 행복을 느끼게 해준다.
누군가 버린 휴지조각들, 이 좋은 공기에 산에까지 와서 피워대고 버린 담배꽁초, 어떤 마음에선지 휴지를 잘 모아 나뭇가지에 걸어놓은 비닐봉지 그리고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강아지 똥 덩어리들, 나는 비난하고 있지만 착한 아내가 다 주워 준비해온 비닐봉지에 담아온다. 요즈음 주변에 많은 나무들이 심겨지고 있어 우리를 푸근하고 즐겁게 하고 있다. 나무 심는 일은 백년대계를 내다보는 일이라고 누군가 말한 것 같다. 진정으로 동감하는 말이다. 많이 심고 잘 가꾸고 돌보아 후손들에게 빌려온 자연을 무언가 보태어 물려주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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