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체전은 물론 축구와 야구경기가 수시로 치러졌던 한밭종합운동장은 대전에서 소리지르고 스포츠에 흠뻑 빠질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올해는 10월 20일부터 26일까지 전국체육대회가 대전에서 열려 많은 종목의 경기가 한밭종합운동장에서 진행된다.이때문에 현재 시설보강이 한창이다.
이곳 체육시설은 스포츠를 즐기는 대전 시민들에게 친숙한 곳이지만 1960년대 공설운동장이 조성될 때 시민들의 기부금이 쓰였다는 사실은 잘 알지 못한다. 시민들의 손때가 묻은 지금의 한밭종합운동장의 역사를 알아봤다.<편집자 주>
▲ 1960년대 초 한밭종합운동장 기반공사. 흙을 쌓아 관중석을 만드는 모습. |
1958년 충남도가 제41회 전국체육대회 유치를 목표로 대전시 부사동에 공설종합운동장 설치위원회를 발족한 가운데 당시 대전을 총괄하던 충남체육회도 이를 계기로 체육계 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한다. 이에 맞춰 대전·충남 주민들도 공설운동장 건설에 각자의 지갑을 열었다. 지역주민들의 이같은 노력에 힘입어 한밭공설운동장은 완성될 수 있었다. 당시 대전과 충남에선 규격을 갖춘 종합운동장이 하나도 없는 실정이었다.
1962년부터 본격 활동에 들어간 공설운동장 추진위원회는 5·16군사 쿠데타 2주년 내에 운동장 설치 5개년 계획을 완성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같은 해 2월 하순부터 배구장·농구장·정구구장 공사에 돌입했다.
1964년 1월 육상경기장과 야구장, 배구장, 농구장, 정구장, 양궁장 등을 완성하고 이들 시설을 관리할 대전공설운동장 사업소도 발족한다. 하지만, 이 당시 만들어진 체육공간은 모두 야외에 논바닥을 다져 운동장을 만들고 흙으로 둔덕을 쌓아 관람석을 만드는 등 지금의 운동장 모습과 상당히 달랐다. 이들 체육시설이 모습을 보이면서 침울했던 충남체육계에 한가닥 희망을 던져줬다.
▲ 1965년 공설운동장(현 한밭종합운동장)과 주변. 당시 흙으로 둔덕을 쌓아 관람석을 만든 모습이 시대의 변화를 느끼게 한다. |
충무체육관은 공설 운동장 안에 설치됐다. 그 모양은 거북선을 상징했다. 민족의 수난기에 민족을 구한 이충무공의 애국충절의 숭모한 정신을 본받아 정신의 지표로 삼고자 했던 것이다.
당시 충무체육관 건립에 도비 5000만원과 시비 5200만원, 주민부담 1273만원이 보태졌다.
1969년 충무체육관 건립계획이 세워지면서 사회 여러 단체에서 찬조금을 받았는데 찬조금 내용이 재미있다. 1971년 대전시정백서에 따르면 충무체육관 건설에 일반회비를 걷었다고 적혀있다. 대전시내 회원은 100원 이상, 찬조회원은 1000원 이상이었다. 기타 시군회원은 정회원 50원 이상, 찬조회원 1000원 이상 낼 대상이었다. 찬조회원은 정치인, 기업인이 해당됐다. 직장단위로 직장모금도 진행됐다. 직장에선 충남도내 전 공무원과 국영기업체, 그리고 은행, 기업체 종사원 등이 월금의 1/100 을 냈다. 학생성금도 있었다. 도내 초등학생이 1명당 10원, 중고등학생 및 대학생은 20원씩 각각 냈다. 극장 성금은 도내 시·군소재 극장 입장자에 대해 입장료 80원이상 5원, 50원 이상 3원, 35원 이상 2원씩 첨가해 거뒀다. 갹출은 1969년 5월 1일부터 그해 9월 말까지 진행됐다. 학생과 서민들의 정성까지 모아진 셈이다.
충무체육관은 1970년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완공됐다. 그 후 이곳은 각종 행사의 단골 장소가 됐다. 1969년 도민체육대회와 50회 전국체전 충남예선을 이곳에서 치뤘다. 당시 도민체육대회에는 충무체육관과 공설운동장에서 도내의 초·중·고등학생 및 대학생, 일반인 등 모두 6000여 명이 참관했다.
그동안 중단됐던 시내문화인 체육대회도 한밭공설운동장 건립에 힘입어 1969년 다시 개최됐다. 이 행사에는 언론기관과 문화원, 대전시 및 대덕군이 참여해 유대를 공고히 하는 커다란 성과를 거뒀다.
▲ 1969년 충무체육관 건립 당시 지붕공사 진행 모습. |
현재 축구장과 달리기 트랙이 있는 주 경기장은 1964년 흙으로 토성을 쌓듯 관중석을 만든 것에서 1979년 철제와 콘크리트를 사용한 현재의 모양으로 우레탄과 잔디구장, 그리고 야간조명까지 현대적 모습을 갖추게 된다. 또 제60회 전국체전을 앞두고 전무했던 수영장을 주경기장 뒤편에 국제 규모에 맞게 신축해 그동안 서울 등지로 전지훈련을 떠나야 했던 수영계에 다시 없는 큰 선물이 됐다. 야구장 개수와 승마장의 완비는 야구와 승마의 중흥을 기약할 수 있는 발판이 됐다.
또 1994년 대전이 직할시로 승격한 이후 처음 개최한 제75회 전국체육대회를 준비하며 대전체육시설을 다시 한 번 일으켜 세우는 계기가 됐다. 1994년에는 게이트볼장을 신설하고 다목적 체육관을 증축하는 등 한밭종합운동장에도 변화가 있었지만 이 당시 월평경기장이 새롭게 만들어졌다. 월평경기장은 제75회 전국체전을 대비하기 위해 사이클장과 궁도장, 양궁장을 만들어 대전의 체육기반을 한 단계 높이는 계기가 됐다.
▲‘집단 체육시설’에서 ‘동네 체육시설’로=그동안 대전지역의 체육기반은 대규모 사람들이 모이는 시설을 만드는 데 집중한 반면 최근에는 집과 가까운 곳에서 즐길 수 있는 체육시설이 늘어나고 있다. 체육이 선수들의 운동을 관람하던 것에서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문화로 옮겨가는 변화를 반영한 것이다.
현재 대전에는 중구 한마음체육관·도솔체육관·인동체육관·올림픽기념국민생활관 등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체육관이 6개 있다. 모두 5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소규모 시설로 주택가와 가까운 곳에 마련돼 시민들이 필요할 때 찾아가 운동할 수 있는 체육 기반시설이다.
요즘 조성하는 체육시설은 한밭종합운동장처럼 한 장소에 모든 시설을 모아 설치하지 않고 동네마다 설치하고 있다. 주민곁에서 생활체육공간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다.
1962년 흙으로 쌓은 운동장이 처음 들어선 이후 세계적 규모의 대전월드컵 경기장을 거쳐 생활체육시설까지 대전의 체육기반이 확대되고 있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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