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숙빈]서로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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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숙빈]서로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5월

[수요광장]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 교수

  • 승인 2009-11-26 10:07
  • 신문게재 2009-05-20 21면
  • 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 교수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 교수
“들길은 마을에 들자 붉어지고 마을 골목은 들로 내려서자 푸르러졌다.”

김영랑은 ‘오월’이라는 시를 이렇게 시작했다. 아름다운 오월의 풍경이 선연히 가슴에 담기며, 만남이니 이어짐, 혹은 서로 주고받는 영향이 떠오른다. 오월은 그 어느 달보다도 자기를 둘러싼 ‘관계’를 많이 생각하게 하는 달이다. 어버이날이나 스승의 날이 있기 때문일 게다. 부모-자녀 관계나 스승-제자의 관계는 개인의 성장에 기본을 이루는데, 부모-자녀 관계가 한 개인의 심리적 자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면 스승-제자의 관계는 사회적 자아의 기초를 구성한다고 할 수 있다.

▲ 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 교수
▲ 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 교수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대학에서는 스승의 날에 학생들이 모두 모여 노래를 부르고 감사 인사를 전한다. 크지 않은 대학이라서 그렇게 시작한 듯한데, 학생들이 해마다 직접 선물을 만들어 감사를 표하는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대전 캠퍼스에서 처음 스승의 날을 맞았을 때, 손뼉을 치는 학생들의 손끝이 발그스름하게 물든 것을 보며 가슴이 뭉클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밤새 색종이로 카네이션 꽃을 접느라 손끝이 물들었다고 하였다.

이후에도 직접 만든 선물은 다양하게 이어졌다. 처음처럼 꽃까지 만들지는 않아도 십자수 쿠션, 곰 인형, 릴레이 카드, 예쁜이 인형, 종이 그림 등등. 연구실에 놓인 선물 종류로 그 교수의 근무 경력을 알 수 있다고 농담할 정도다. 그런데 어느 해이었던가 한 번은 시중에 파는 차를 받았다. 아, 드디어 싫증이 난 게로구나 했더니 다음해부터 정성스런 선물 제작은 되살아났다. 아마 직접 만드는 정성을 전통으로 이어가고 싶어진 것 같다. 드디어 올해는 더욱 진화된 선물을 받았다. 연구실마다 다니면서 교수들의 사진을 찍더니 그것으로 커다란 퍼즐을 만들어 액자에 넣어준 것이다.

처음 받아보는 신기한 선물이었다. 아마 학생회 임원들이 해마다 잊지 못할 선물을 선정하느라 꽤 머리를 쓰나 보다. 스승의 날 행사에 초대를 받을라치면 ‘스승’이라는 낱말이 주는 부담감 때문에 늘 부끄럽고 쑥스럽다가도, 선물의 정성스러움과 진기함 때문에 그만 아이처럼 좋아라 웃게 된다. 올해는 선물을 배달한 학생들을 연구실에 앉히고 국화차를 대접하며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제자들 덕분에 내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본다고. 제자들의 정성을 통해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를 새롭게 배운다고.

1958년부터 선생님을 위문하기 위한 청소년들의 봉사활동에서부터 시작되어 1964년 ‘스승의 날’로 명명되고 다음해부터 5월 15일로 정해졌다는 이 날은 이후에도 기념을 하네 마네, 세파를 겪어왔다. 험한 운명은 감사 인사를 받느냐 마느냐로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스승의 날이 가져야 할 진정한 의미와는 상관없이 물질 지향적 관점에서 보이는 편중된 흑백 반응 때문이다. 선물의 부작용을 원천봉쇄한다고 학교가 문을 닫더니, 학생들은 열려 있는 학원에 가서 스승의 날 감사를 전한다.

물론 학원 선생님에 대한 인사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어째도 핵심에서 진정한 의미를 배제하지 않은 채 해결 방안을 생각하자는 것이다. 가르치는 입장이 아니라 배우는 입장으로 생각해봐도 가르침은 귀한 것이고 가르침을 받으면 감사드리고 싶다. 그리고 고마움에 대한 인사야말로 정말 가르쳐야 할 예의 아니겠는가. 그러니 학교 문을 닫는 날이 아니라 살아가는 관계 속에서 서로 서로에게 주는 의미를 일깨워주는 아름다운 날이 되도록 하자. 진정한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지혜로운 방법을 생각해보자.

세상의 선생님들이시어, 세종대왕의 생신이기도 하다는 5월 15일을, 대왕 세종의 스승다운 넓은 조망과 부족함에 대한 배려와 사랑, 그리고 실천적 지혜를 다시금 되새기는 날로 삼읍시다. 미래를 가꾸는 좋은 스승으로 거듭나도록 오월의 푸름을 마음에 새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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