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인구 계룡건설 명예회장. 13,15대 국회의원 |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7년에 걸친 임진왜란 때 전 국토가 왜군에 점령되었지만 수군(해군)통제사로서 왜 수군을 섬멸하고 압박하여 급기야는 왜군이 전면 철수하지 않으면 안 될 지경으로 몰아 부친 국난 극복의 영웅이시다.
육지와 바다를 가리지 않고 빛나는 전과를 올렸지만 시기와 질투와 모략과 음모를 받아 해직, 수감, 모진 고문을 받으면서도 충성을 다하며 백의종군, 살신성인의 귀감을 보여 주셨다.
전란 막판에 충무공을 재임명, 왜군을 무찌르라는 어명을 받고 전단을 추슬러 본 결과 수백 척의 전함이 불과 12척만 남아있는 상태였고 수하의 믿을 만한 참모와 장군들은 전사했거나 내쫓겨져서 처참한 지경에 놓여 있음을 한탄치 않을 수 없었다 한다.
“나에게는 아직도 12척의 전함이 남아있다” “죽지 않고 사라진 명장들은 또 불러서 싸우면 된다” 는 재기의 의지와 굳은 각오로 수군을 수습하고 신출귀몰하는 작전계획을 세워 수백 척의 왜 수군을 차례차례 유인하여 섬멸했다 한다.
장군은 마지막 철수하는 왜 전단을 섬멸하는 전투를 지휘함에 있어 입어야할 갑옷을 버리고 평복으로 사령탑에서 진두지휘하다 왜병의 조총에 맞아 전사했다.
주위에 모여든 참모들한테는 “왜병을 섬멸하기 전에는 나의 죽음을 장병에게 알리지 말라 그대들은 나를 버리고 오로지 왜병 섬멸 전투에 임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장렬하게 생을 마쳤다 한다.
그 당시 선조는 만일 이순신장군을 그대로 영웅화하면 백성들의 열화같은 추대로 왕위를 뺏길 수도 있다는 경계를 하고 있었고 장군도 그러한 역적누명을 쓸 수 있다는 예견을 했다는 것이다.
마지막 전투에서 갑옷을 버리고 전사한 것은 어찌보면 자결로 생을 마치고 싶어서 행한 처신으로 사가들은 짚고 있으며 이는 바로 살신성인의 표본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후대에 이르러 이순신장군은 충무공으로 추대되고 여러 왕조에서 영의정에 이르는 갖은 추서와 교지를 받아 성웅으로 모시게 되었다.
고 박정희 대통령은 현충사를 지어 성역화하고 역대 대통령이 매년 4월 28일 직접 참례하는 거국적 행사로 오늘에 이르게 하였다.
경매에 부쳐진 충무공의 유허는 문화유적지로 지정되어 있고 현충사에서 관리하여 왔던 것이 충무공 15대손 종부에 의하여 이번과 같은 변을 당한 것이다
필자는 충격적인 이 소식을 듣고 문화재청장과 대전지법원장을 차례로 방문하여 계룡장학재단 명의로 낙찰해서 동시에 국가에 헌납하겠다는 요지의 예비신탁서를 문서로 접수하고 협조를 당부한 바 있다.
그 뜻은 이러한 소중한 재산이 종부 개인의 사유지로 방치된 허점 때문에 발생한 것이고 국유화되면 그러한 허점이 영원히 없어질 것이기 때문에 애국심과 애향심의 발로로 결심한 것이라는 설명도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2차 경매에서 문화재청, 덕수이씨 종친회, 모 건설회사가 경합을 하여 결국 덕수이씨 종친회에 11억 5,000만원에 경낙 되었다 한다.
한편 다행한 일이지만 최선의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왕이면 문화재청에 낙찰되었어야 근본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보는 필자는 아쉬움을 금할 길 없다.
또한 국가보물급을 포함한 충무공의 유물 140여점이 아직도 사유점용상태로 있는데 이것 또한 차제에 문화재로 등록되고 현품은 현충사에 이관되기를 바란다.
들리는 바로는 이 미등록문화재는 시가 1,000억 원을 호가하는 가치가 있으며, 미수에 그쳤지만 이를 일괄 매각처분하려고 하는 시도가 있었고, 매수상담자의 신고로 무산된 상태라 한다.
빠른 시일 내에 문화재로 등록되고 철저하게 관리할 것을 강력히 희망한다. 위대한 성웅의 가치 있는 유허재산과 유물은 국가관리화가 되어야 이번에 놀란 국민들도 안심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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