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다음 영화는 200만 돌파’라고 누누이 강조하는 영화감독 구경남. 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제천을 찾았다가 후배 부상용과 만난다. 경남은 상용의 아내와 술을 마시다, 둘의 관계를 오해한 상용에게 행패를 당하고 그 길로 도망친다. 얼마 뒤 특강 차 방문한 제주도에서 경남은 대선배의 아내가 된 첫사랑 고순을 만나고는 가슴 뜨거워진다.
하지만 ‘찜찜한’ 홍상수는 이제 잊어도 되겠다. 그의 아홉 번째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홍상수를 ‘잘 알지 못하는’ 관객들도 실컷 웃으면서 볼 수 있는 영화다. 발랄하고 유쾌하며 심지어 귀엽기까지 하다.
홍상수 스타일은 이번에도 반복된다. 너무 일상적이어서 오히려 은밀하게 느껴지는 솔직한 캐릭터와 대사는 여전하다. 이번에도 여행을 떠난다. 도착지는 충북 제천과 제주도다.
각각의 곳에서 ‘내 짝을 찾아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큰소리치는 커플을 만난다. 모두가 새 삶을 말하고 갈구하지만 새 삶이란 대체 무엇인가. 사실 그들은 새 삶이 뭔지 영화의 제목처럼 잘 알지 못한다. 홍상수는 사건의 중심에 놓인 인물들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이들의 속물근성을 낯 뜨거울 정도로 적나라하게 기록한다.
주인공 구경남은 이름 그대로 커플을 구경하는 남자다. 구경꾼답게 구경만하면 될 텐데 괜히 아는 체, 그들 삶에 끼어들다가 망신만 당한다.
속물근성 가득한 것도 밥맛인데, 남의 일에 이리저리 간섭까지 하는 경남 같은 인간들을 향해 홍상수는 고순의 입을 빌려 ‘일침’을 가한다.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그래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딱 아는 만큼만 안다고 해요.”
무엇보다 두드러진 건 저만 알고 젠체하는, 속물근성을 바라보는 한결 부드러워진 시선이다. 홍상수는 경지에 오른 듯하다. 말하는 사람, 듣는 사람 모두 쉽고 편한 소통 방식을 터득한 듯하다. 홍상수 식 익살은 만개한다. 박장대소하게 할 뿐 아니라 그의 익살은 이야기의 흐름을 쥐락펴락하면서 이야기를 온전히 전달한다.
영화에서 영화감독에게 던지는 한 학생의 질문.
“왜 이런 영화를 만드세요? 사람들이 이해도 못할…”
질문은 홍상수 자신에게 들려주는 다짐 아닐까. 앞으론 ‘즐거운’ 홍상수를 자주 만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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