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 관점의 도시 풍경

  • 문화
  • 공연/전시

문화적 관점의 도시 풍경

<변상형 교수의 문화스펙트럼>

  • 승인 2009-11-26 10:07
  • 신문게재 2009-05-13 10면
  • 변상형 한남대 예술문화학과 교수변상형 한남대 예술문화학과 교수
새로운 주거단지로 거듭나기 위해 파헤쳐진 대전서남부권을 지나치다 보면 대전에서 몇 곳 남아 있지 않았던 농촌 풍경을 관통하면서 느꼈던 정취는 더 이상 느끼기 어렵다. 서남부권 개발 도중 상대동 일대에서 발굴된 유적들을 생각해본다면 더 확실한 시간의 단절을 이해할 수 있다. 겨우 일부 발굴한 유물은 박물관의 진열대에서 박제화 된 채 만날 수 있을 뿐이다.

그 나마 몇몇 뜻있는 이들의 노력의 결과에 의해 우리 지역의 유물로 남았으니 다행이라고 해야겠지만, 대전 지역의 역사성을 고스란히 온 몸에 간직하며 대대로 살아왔던 이들의 무형의 기억 속에 남아있던 삶의 이야기들은 어떻게 보존될 수 있을 것인가? 시대적 가치에 따라 기록으로 남아 있을 수 있는 대상도 달라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에게는 아무런 중요성도 갖지 못할 것이겠으나, 유형의 기록과 보존만큼 무형의 구비문화도 그 못지않게 역사성을 구성하는 중요 요소이다. 파괴하는데 몇 달이면 족한 문화나 문명도 복원은 몇 백 년이 지나가도 힘들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내가 살던 집 앞 큰 도로를 신작로라고 부르던 때부터 대전의 한 복판에서 대전의 랜드 마크가 되어왔던 중앙데파트는 작년 10월, 목척교주변의 원도심과 대전천의 생태복원을 위해 영영 그 형체를 잃어버렸다. 한마디로 깨끗이 건물을 털어버린 자리엔 벌써 시원스럽게 드러난 하천 탓에 눈이 시원하다 못해 허전하다. 마치 다정한 자매처럼 자연스레 길 건너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홍명상가도 옛날의 낯빛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비록 하천 위를 막은 시멘트 바닥에 마련한 홍명상가 앞 공원은 그나마 원도심을 지나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숨통을 틔워주던 휴식공간이었는데 이 또한 공원 밑으로 흐르는 물이 있었음을 친절히 일깨워주느라 그랬는지 사나운 몰골을 생경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다리에 세워진 조감도를 보자면 에코도시가 곧 미래 대전의 자화상처럼 펼쳐져 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생태적 접근으로 도시개발을 기획하고 지속가능한 도시 발전을 꾀하는데 반대할 이유는 전혀 없다. 오히려 뒤늦은 감이 없지 없나하는 아쉬움과 제발 제대로 된 실천이 따랐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곧 떠나 갈 시일을 얼마 남지 않아서일까? 토요일인데도 불구하고 홍명상가 안은 손님들의 발길이 뜸해서인지 썰렁한 기운이 상인들의 모습에서도 역력했다. 더 이상 물건을 팔고 사는 대중적 공간으로서 갖는 활기와 힘은 찾기 힘들었다. 공원을 잃어버린 노인들은 홍명상가 주변 계단 여기저기에서 떠돌았고 은행동으로부터의 발길을 사납게 차단한 벽 아래에서는 벌써부터 파릇한 새싹들이 생태하천의 복원을 발 빠르게 기다리고 있었다. 문제는 대전의 근현대 역사의 한 부분을 담당 했던 공간에서 이루어졌던 우리들의 기억과 그 곳에서 형성되었던 무형의 문화들은 얼마만큼 보존될 수 있는 것인지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중앙데파트가 해체되면서 원도심의 풍경이 달라졌듯 홍명상가도 사라지고 나면 곧 도심의 지형도가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변화하는 것은 단지 익숙한 건물이 한 채 없어지고 마는 것에서 그치지는 않는다. 생태하천의 복원으로 인해 시민들에게 그 혜택을 돌려주고 더 좋은 생활환경을 제공하겠다는 시의 원칙과 개발로 인한 경제적 효과도 누려보겠다는 의도는 시민들에게 지속가능한 미래의 발전을 보장해준다는 면에서 반대하기 힘든 매력적인 제안이다.

그러나 다수에게 공익이 돌아가는 발전이라 해도, 그 과정에서 비록 소수라 할지라도 그들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며 이루어내는 일은 결코 정당한 일은 아닐 것이다. 도시재개발과 생태하천의 복원이 만나 이루어지는 모처럼의 긍정적인 개발논리도 한 도시의 근현대적 산업화와 상업문화에 따라 형성되었던 무형의 역사성과 시민의 기억을 하루아침에 지우며 이루어진다면 우리의 현재적 존재기반도 날려버리는 셈이 된다.

우리자신의 일부이기도 했던 가까운 현재진행형 문화를 덮어버리고 또 다른 미래를 기계적으로 설계한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 정신에 대한 폭력일 수 있다. 중앙 데파트가 발파되는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부풀었던 마음 한편에 사라져 가는 추억에 대한 아쉬움이 함께 했을 것이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대전에서 태어나고 오랫동안 살아온 시민들의 기억 한편에 남아 있을 공간을 대전 근현대의 한 풍경으로 남겨 놓으려는 노력이 없는 가운데 무형의 자산과 그 역사성은 곧 사라지려한다.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 그 공간을 기억하고 의미 있는 접근으로 우리도시의 근현대의 한 자취를 남길 수 있는 것인지 고민해보아야 한다. 이제는 홍명상가를 문화적으로 바라보아야 할 때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외출제한 명령 위반하고 오토바이 훔친 비행청소년 소년원행
  2. 상명대, 제25회 대한민국 반도체설계대전 'SK하이닉스상' 수상
  3. 생명종합사회복지관, 제15회 시가 익어가는 마을 'ON마을축제'
  4. 충남대병원, 만성폐쇄성폐질환 적정성 평가 1등급
  5. 한국건강관리협회, 창립 60주년 6㎞ 걷기대회 개최
  1. 서구 소외계층 60가정에 밑반찬 봉사
  2. [날씨] 단풍 절정 앞두고 이번 주말 따뜻한 날씨 이어져
  3. 대전 노은지구대, 공동체 치안 위해 '찾아가는 간담회' 실시
  4. 샛별재가노인복지센터 생태로운 가을 나들이
  5. [현장취재]대전MBC 2024 한빛대상 시상식 현장을 찾아서

헤드라인 뉴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 대전에 집결한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 대전에 집결한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이 대전에 집결한다. 대전시는 '2025년 중소기업융합대전'개최지로 25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올해 행사에서 대회기를 이양받았다. 내년 대회는 대전 컨벤션센터에서 열린다. '중소기업융합대전'은 중소기업융합중앙회 주관으로 중소기업인들 간 업종 경계를 넘어 교류하는 것이 목적이다. 분야별 협업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지역별 순회하는 화합 행사 성격도 띠고 있다. 2004년 중소기업 한마음대회로 시작해 2014년 정부 행사로 격상되었으며 2019년부터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공동으로 개최하고 있다..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의 한 사립대학 총장이 여교수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경찰이 수사에 나선 가운데, 대학노조가 총장과 이사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대학 측은 성추행은 사실무근이라며 피해 교수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전국교수노동조합 A 대학 지회는 24일 학내에서 대학 총장 B 씨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성추행 피해를 주장하는 여교수 C 씨도 함께 현장에 나왔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C 씨는 노조원의 말을 빌려 당시 피해 상황을 설명했다. C 씨와 노조에 따르면, 비정년 트랙 신임 여교수인 C 씨는..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20대 신규 대원들 환영합니다." 23일 오후 5시 대전병무청 2층. 전국 최초 20대 위주의 자율방범대가 출범하는 위촉식 현장을 찾았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자원한 신입 대원들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첫인사를 건넸다. 첫 순찰을 앞둔 신입 대원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고, 맞은 편에는 오랜만에 젊은 대원을 맞이해 조금은 어색해하는 듯한 문화1동 자율방범대원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위촉식 축사를 통해 "주민 참여 치안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자율방범대는 시민들이 안전을 체감하도록..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장애인 구직 행렬 장애인 구직 행렬

  •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