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경 건양대 기업정보관리학과 교수 |
외래종이라고 배척하고, 목재로 값어치가 없다고 외면하며, 가시가 있다고 멀리하고, 심지어 번식력이 너무 강해 산을 망친다고 증오하기까지 한다. 그러니 이제 아카시아는 아무 쓸모없는 나무로 취급되어, 자라기만하면 밑동을 베어버리거나 그도 부족해 베어 낸 자리에 약을 발라 무자비하게 고사시키기까지 한다. 그러나 평소엔 이렇게 이름까지 빼앗긴 채 천덕꾸러기처럼 구박만 당하던 아카시아도, 때가되면 그 누구보다도 훌륭하게 자신의 진가를 발휘하게 된다.
5월 초·중순, 땅거미가 질 무렵 꽃이 핀 아카시아 숲속을 걸어보자. 은은하게 온몸을 감싸 흐르는 향기는 방금 세수를 하고 나타난 첫사랑의 향내처럼 마음을 사로잡는다. 또한 이 때가되면 아카시아는 설탕보다 달콤하고 아이스크림보다도 부드러운 꿀을 곤충과 인간에게 마음껏 나누어 준다. 어디 그뿐이랴, 아카시아 꽃은 약용으로는 물론, 들에서 놀다 지친 아이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는 간식으로도 훌륭하게 이용된다. 그리고 가지런히 돋아있는 나무 잎은 가축의 사료로, 심지어는 들에 나온 연인들의 가위바위 놀잇감으로도 요긴하게 사용된다.
세상에 태어난 수만 가지 생명들 중 어느 것 하나 그 존재 이유나 가치가 없는 것이 있겠는가? 하물며 이런 아카시아를 한낱 쓸모없는 천덕꾸러기 나무로 취급하는 것은, 눈앞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우리들의 잘못된 심성과 지나친 욕심의 발로(發露)라고나 할까? 사람도 아카시아를 닮은 사람이 많이 있다. 지금은 열악한 환경 때문에 자신을 드러내지 못해 소외되고 무시당하며 살고 있을지라도, 언젠가 때가되면 훌륭하게 능력을 발휘하고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이 많이 있다.
공부는 안하며 말썽만 피운다고 구박받는 청소년이 그렇고, 낯 설은 문화 속에 편견과 차별을 겪어가며 살고 있는 다문화 가정의 외국인도 그 예다. 잠재된 능력을 찾아내 그 것을 키워주고, 그들이 우리사회의 일원으로 제 몫을 다 할 때까지 보살피고 기다려 주는 것이 참된 교육이자 우리의 성숙된 자세가 아닐까? 평소엔 온갖 멸시와 학대 속에서 살다가도, 언젠가 때가되면 훌륭하게 제 가치를 다하는 아카시아를 보며 나는 소중한 교훈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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