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가현 전 상근부회장은 30여 년 전의 기억을 이같이 떠올렸다. 말 그대로 대전지역의 상공업 여건은 넓은 땅만 있을 뿐 기반시설이 턱없이 부족했던 것.
지역에서 모인 돈은 모두 서울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는 구조여서 지역에서 공장을 증축할 만한 대출을 받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고 신씨는 설명했다.
자연스럽게 은행을 만들자는 생각에 대전의 기업인들이 공감하게 됐단다. 신 전 부회장은 “특히 충청은행과 대전투자금융회사 등은 대전상의의 노력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충청은행을 세울 때만 해도 대전지역에서 회사를 더 키워보고자 대출을 받으려 해도 서울을 몇 번 오가야 했단다. 그나마 충분한 자금이 나오지 않아 지역 경제의 영세성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고 한다.
투자금융사 역시 같은 맥락에서 만들게 된 것이라고 신씨는 회고했다.
“지금은 지자체에서 기업을 키우기 위해 발벗고 나서고 있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어요. 그렇다보니 상의에서 필요한 것을 적극적으로 제기해 상업기반을 닦으려 노력한 결과 투자금융사 설립도 이끌어 낸 셈이죠”
사업을 조금 더 크게 하려는 상공인들의 노력이 결국 대전 전체가 발전하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게 신 전부회장의 설명이다.
그는 “은행을 만들자는 움직임은 자연스럽게 상공회의소로 모이게 됐고,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충청은행이나 대전투자금융회사 같은 대출을 할 수 있는 금융기관을 만드는 성과를 얻었다”고 말했다.
상공회의소에서 일하면서 가장 긴박했던 때를 신씨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세금조차 기업인들이 부담스러워하던 것을 떠올렸다.
당시 외환위기 때 지역 기업인들이 자본사정이 악화돼 집단 부도사태까지 걱정하는 상황이었다는 것. 당시 당연히 대출은 거의 되지 않는 상황에서 각종 세금을 낼 시기를 앞두고 이를 조금 늦춰야 한다는 건의가 이어졌고 이에 상공회의소 기업인들의 건의를 받아 세금 납부 기한을 연장하고자 국세청을 찾아다녔단다.
“대전지방국세청과 서울에 있는 국세청에 건의문을 제출하고 세금납부 기간을 조금만 늦춰줄 것으로 설득했습니다. 한 번으로 안 돼 몇 차례 찾아다녔고 그 덕분인지 6개월 한시적 연장이라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대전상공회의소 혼자 해냈다고 볼 수 없지만 필요한 시기에 적절한 정부 지원이 나올 수 있도록 하는데 한 몫 했다는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단다. 또 현재 둔산동에 독립사옥으로 마련된 상공회의소 건물을 갖기까지 숱한 역경이 있었다고 한다.
1970년대 은행동에 충남상공장려관을 사용하고 있었지만, 당시 건물소유주가 충남도로 돼 있고 대전지방원호청을 함께 사용하거나 충남지방병무청과 벽을 세워 사용하는 등 셋방살이를 면치 못했다는 것. 특히 대전상의가 회관 건립의 유일한 자원으로 간주했던 소유부지 역시 대전시 토지구획 정리사업으로 300여㎡로 줄게 돼 낭패를 보게 됐다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1972년 충남상공장려관을 충남도에서 불하받은 후에야 독립사옥이라는 꿈을 이룰 수 있었다고 신씨는 밝혔다.
“상공회의소가 기업과 정부의 중개자 역할을 하는 만큼 독립적으로 운영하려는 염원이 강했어요. 지금도 상공회의소는 기업인의 목소리를 정부에 전달하는 몫을 충실이 이행하고 있습니다” /임병안 기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