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순달 공학박사·한국과학기술대학 초대학장 |
노벨상 제정 초기에는 ‘북극의 작은 나라 스웨덴에서 세계적인 인제를 골라 상을 준다 해도 누가 믿겠으며 그리고 그 막대한 기금을 어떻게 노벨의 유언대로 운용할 것 인가’ 하는 두려움 때문에 기금운영기관을 정하기가 매우 어려웠다고 한다. 결국, 정부의 개입으로 노벨재단이 설립되고 스웨덴의 인재를 총동원 하다시피 해서 어렵게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업적을 평가해야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 자체의 능력을 개발해야했다. 그 덕택에 스웨덴의 그 분야 수준이 시간과 함께 크게 향상되었다고 한다. 한 예로 매년 발간되는 문학 작품의 양은 책을 세워 꽂았을 때 그 길이가 3km나 되고 그것을 심사하기 위해서는 그 많은 문학작품을 소화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스웨덴의 문학은 그만큼 발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노벨상의 심사는 어떻게 하나. 매우 궁금한 사항이다. 필자는 스웨덴의 스톡홀롬(Stockholm)에 있는 카롤린스카 의과대학 교수이며 노벨의학상심사위원회의 간사인 린스든 박사의 초청으로 그 대학에 있는 노벨의학상 심사전용건물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약속시간인 낮 12시경에 그 고층건물 입구에 갔더니 철문이 잠겨 있었다. 잠시 후 12시 정각에 그 육중한 철문이 열리면서 아름다운 금발의 비서가 나를 린스든 박사의 집무실로 안내했다. 그분은 12년째 노벨의학상심사위원회 간사 직을 맡은 인물이다. 그분이 스웨덴의 대학교수 일행과 방한해 국제학술대회를 가진 적이 있었다. 그와는 1984년도 노벨시상식에 초청받았을 때부터 면식이 있는 분이었다. 그분의 설명에 의하면 심사위원은 주로 대학교수로 구성되나 구성원이 누구인지는 극비이고 또한 피 심사후보는 추천을 받아 대상을 정하는데 노벨상을 받은 사람이 추천하는 것을 중시한다고 했다. 노벨재단 이사장이 그 대학교수인데 10번이나 추천되었으나 낙방하고 그다음 해에 수상하게 되었는데 자신은 10번씩 추천된 사실을 몰랐다고 할 만큼 비밀리에 이루어진다고 한다. 심사내용의 기록은 50년간 비공개로 보존한다고 한다. 엄정한 심사와 거액의 상금이 노벨상을 세계최고의 상으로 만든 것이다.
우리나라가 한국전쟁의 잿더미를 극복하며 세계에서 이름을 빛내는 위치로 발전해 온 데는, 한국인에게 독특한 빨리빨리 정신이 매우 큰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빨리빨리 정신은 노벨상을 탈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과는 매우 상반된 성격을 갖는 것 같다. 목표를 세우면 한순간이라도 빨리 성취하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빨리빨리 정신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우리의 큰 장점이다. 우리의 근대화 역사에 이 정신이 깊숙이 자리 잡지 않는 것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근면 자조 협동의 새마을 정신으로 농촌을 살기 좋은 곳으로 바꾸고 아파트를 남보다 더 빨리 짓고 고속도로와 교량을 더욱더 짧은 기간 내에 완공하는 등 그 예는 부지기수이다. 이미 알려진 원리를 이용해 새것을 개발해 싼값으로 생산하는 것은 공학에 해당하는 것으로 여기에도 한없는 창의력과 노력이 필요하다.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입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를 더 짧은 시간 내에 달성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시간을 투입해도 얻기 어려운 것이 있다. 그것은 자연의 신비를 알아내는 것이고, 과학이다. 사전의 의미에서 과학이란 무지나 오해에 반대되는 정확한 지식을 갖는 것이다. 인류역사에 수많은 사람이 자연의 신비를 캐기 위해 그들의 일생을 걸고 노력해 우리가 사는 오늘을 만들어 낸 것이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천재라고 부른다. 서두른다고 해도 얻을 수 없는 것, 곧 자연의 신비를 캐는 과학에 집중하는 것과 진인사 대천명의 자세만이 우리나라에 노벨상을 가져다주는 길이 되리라 믿는다. 우리나라 노벨상 수상자에게 박수를 보내게 될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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