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영]스승의 날과 촌지(寸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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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영]스승의 날과 촌지(寸志)

[교육단상]이건영 대전어은중학교 교감

  • 승인 2009-11-26 10:07
  • 신문게재 2009-05-06 20면
  • 이건영 대전어은중학교 교감이건영 대전어은중학교 교감
이제 며칠 있으면 ‘스승의 날’이다. 제 2의 부모로서, 오늘의 내가 올바른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치고 길러 주신 선생님의 그 높은 은혜를 가슴에 새기고, 마음으로 기리자는 순수한 뜻으로 시작된 자랑스러운 날이 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스승의 날’은, 우리 선생님들을 기쁘게 해주는 날이 아니라, 뜻있는 모든 선생님들의 마음을 한없이 고통스럽게 해 주는 ‘치욕의 날’이 되었다. 왜 그럴까? 두말할 것 없이 그놈의 촌지(寸志) 때문이다.

▲ 이건영 대전어은중학교 교감
▲ 이건영 대전어은중학교 교감
촌지란, 원래 속으로부터 우러나온 자그마한 마음을 나타낸 것뿐인, 적은 선물을 뜻하는 말인데, 지금은 크게 변질 되어 뇌물성 금품을 이르는 말이 되었다. 이렇게 ‘스승의 날’이 뇌물성 금품을 주고받는 날로 인식되어, ‘스승의 날’ 한 달 여 전부터, 각종 언론 매체의 집중 포화를 받는가 하면, 정부의 관계 기관으로부터는 우리 선생님들이 예비 범죄자 같은 취급을 당하는 날이 된지가 이미 오래이니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스승의 날’이 ‘치욕의 날’이 된 데에는 누구보다도 우리 선생님들 자신의 책임이 크다. 극히 일부라고는 하지만 아직도 금품을 밝히거나 거절하지 않고 받아 챙기는 몰지각한 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문득 중 3 때 담임이셨던 김인영 선생님이 생각난다. 내가 집안이 가난해서 수학여행을 못 가게 되었을 때 선뜻 수학여행 비를 대납해 주셨고, 졸업하던 해에 역시 가난 때문에 진학을 못해 크게 위축되었던 나를, 자상한 편지로 격려하고 이듬해 고교 진학 때까지 이끌어 주셨던 선생님이시다. 그 김 선생님께서 유성중학교 교감으로 영전하신 1989년 ‘스승의 날’ 아침, 나는 인삼 한 상자를 사 들고 가서 선생님께 인사를 드렸다. 그런데 그때가 선생님을 생전에 뵌 마지막이 될 줄이야. 그해 여름, 선생님께서는 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인삼 한 상자, 그게 내가 선생님께 드린 처음이자 마지막인 촌지였다. 김인영 선생님! 살아가면서, 특히 교직에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달려가 말씀 드리고 어리광이라도 피우고 싶은 선생님, 지금은 인삼보다도 더 크고 비싼 촌지도 많이 드릴 수 있는데…….

내가 받은 촌지 중에 9년 전 M중학교를 떠날 때, 학부모 여섯 분이 석별의 정을 담아 공동으로 사 주신 노란 색의 T셔츠가 있다. 봄이 되면 나는 그 T셔츠를 즐겨 입는데, 엊그제 또 입으려다 보니 소매의 팔목 부위가 낡아 해어져 있었다. 차마 버릴 수가 없어 수선 집에 맡겼더니 깔끔하게 고쳐졌다. 기쁜 마음으로 그 여섯 분들의 정을 생각하면서, 다시 입을 수 입게 되었으니 그저 감사할 뿐이다.

이제 내가 교직에서 ‘스승의 날’을 맞이할 날도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인지 가끔은 촌지가 그리울 때가 있다. 초임 시절 봄 소풍 때 남숙이가 곱게 싸 가지고 왔던 삶은 겨란 한 개, 가을 운동회 때 선용이 할머니께서 주신 찐 밤 한 주먹, 그리고 C중학교 시절 연호 어머니가 사 주신 양말 한 켤레, 아니다. 그런 것들은 돈이 드는 것이니, 영수 어머니가 걸었던 전화 한 통 - “선생님! 우리 영수 잘 가르쳐 주셔서, 정말로 고맙습니다.” 이런 촌지 말이다.

‘스승의 날’을 맞으며, 나는 다시 한 번 다짐한다. 앞으로도 더욱 성실하게 살면서, 나부터 청렴을 실천하여 ‘스승의 날’이 정말로 ‘스승의 날’ 다운 그날이 될 때까지 노력하겠다고. 그리고 다른 선생님들께도 감히 말씀 드리고 싶다. 존경이 담긴 진정한 촌지를 기쁘게 받을 수 있는 ‘스승의 날’을 만들기 위해, 우리 모두 스승의 정신으로 교단을 지키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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