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칠]신명을 깨워 한 판 놀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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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칠]신명을 깨워 한 판 놀아보자

[문화초대석]조성칠 대전·충남 민예총 사무처장

  • 승인 2009-11-26 10:07
  • 신문게재 2009-05-04 20면
  • 조성칠 대전·충남 민예총 사무처장조성칠 대전·충남 민예총 사무처장
 무더웠던 여름 뙤약볕이 한풀 꺾기면서 바람도 살짝 불어와 벌겋게 달궈진 몸을 식혀주고 있다. 해가 설핏 기운 마을 공터에선 몇몇의 젊은이들과 동네 부녀자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조무래기들은 아직도 덜 식은 마을회관 앞마당에서 재잘거리며 뛰어놀고 그중 몇몇은 젊은이들과 장난을 치려고 툭툭 시비를 걸어 본다. 해가 서산에 반쯤 남아 걸렸을 때다. 이윽고 풍물소리가 울린다.

▲ 조성칠 대전·충남 민예총 사무처장
▲ 조성칠 대전·충남 민예총 사무처장
여름 볕에 시달려 지친 마을을 깨운다. 젊은이들과 동네 노인, 중늙은이 할 것 없이 한 떼가 되어 풍장을 메고 길 굿을 연다. 마을 아낙들은 한 소쿠리씩 먹을 것이 담긴 그릇을 이고 회관 앞 공터로 모여 여기저기 멍석에 풀어놓는다. 우물물에 담가 놓아서 시원한 막걸리 몇 통하고 김치, 말린 생선, 풋고추와 된장 같은 것들이 펼쳐진다.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온 패들은 본 마당에 장을 핀다.

풍물 가락에 몸을 맡긴 마을 사람들은 한데 어우러져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면서 제대로 된 난장을 벌이고 있다. 여기엔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 물론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배고픈 줄도 모르고 놀고 있다. 많은 시간은 아니더라도 그 순간만큼은 시간이 멈춰선 듯하다. 그런데 여기에 아주 특별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허리가 많이 굽은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가 어깨춤을 추고 나름 부지런히 발동작을 하신다. 우리가 보기엔 어정쩡하기 이를 데 없는데 당신께선 굉장히 잰 놀림을 하시는 거였다. 얼핏 보기엔 많이 어색하고 춤이라고 하기보다는 그냥 어깻짓이고 발도 거의 끌다시피 하지만 당신의 어깨엔 신명이 실려 있다.

바닥을 끌 정도의 힘든 발걸음이지만 그 흰 고무신코에도 신명이 묻어 나온다. 그런데 정작 더 놀란 것은 그 분이 몇 년째 병으로 잘 일어나지도 못하고 앉은뱅이처럼 살아 오셨다는 사실이다. 제대로 서보지도 못하고 앉아서만 줄곧 생활해 오셨다는 것이다. 외부에서 온 우리보다 같이 살고 있는 동네사람들이 더 놀란다. 그러면서 할머니 손을 잡고 너무나도 좋아라 하면서 그 난장 속에서 같이 어우러진다. 옆에 있던 중늙은이 며느리는 연신 눈가를 훔치며 서있다.

 소설 같은 이 한 장면은 예전에 서해안 어느 마을에서 풍물과 그 지역에 전승되던 민요를 배우고, 배운 것을 가지고 발표회 겸 마을사람들과 마을축제를 열 때 보았던 장면이다. 그 할머니를 일으켜 세운 것은 과연 무엇인가? 몇 년째 걷지도, 일어서지도 못했던 그분을 춤추게 만든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눈으로 직접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한참을 그 ‘신명’이라는 것을 가지고 많이 씨름해왔다. 신명이 오르면 병든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더 나아가 이 사회에 건강함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여러 책을 통해 이론적 경험을 하긴 하지만 이때 실제적 사실을 확인한 것이 나의 문화관의 근간을 이루게 되었고 그것이 결국 문화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하게 된 계기였다.

 요즘 많이 힘들다고 한다. 그렇다고, 캄캄한 어둠이 계속 된다고 주저앉아 있을 수만 없지 않겠는가? 그럴수록 더 우리의 신명을 불러일으킬 때인 것 같다. 우리 서로의 신명을 깨워 일으켜보자. 그리고 그 신명을 가지고 한판 놀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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