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성칠 대전·충남 민예총 사무처장 |
풍물 가락에 몸을 맡긴 마을 사람들은 한데 어우러져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면서 제대로 된 난장을 벌이고 있다. 여기엔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 물론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배고픈 줄도 모르고 놀고 있다. 많은 시간은 아니더라도 그 순간만큼은 시간이 멈춰선 듯하다. 그런데 여기에 아주 특별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허리가 많이 굽은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가 어깨춤을 추고 나름 부지런히 발동작을 하신다. 우리가 보기엔 어정쩡하기 이를 데 없는데 당신께선 굉장히 잰 놀림을 하시는 거였다. 얼핏 보기엔 많이 어색하고 춤이라고 하기보다는 그냥 어깻짓이고 발도 거의 끌다시피 하지만 당신의 어깨엔 신명이 실려 있다.
바닥을 끌 정도의 힘든 발걸음이지만 그 흰 고무신코에도 신명이 묻어 나온다. 그런데 정작 더 놀란 것은 그 분이 몇 년째 병으로 잘 일어나지도 못하고 앉은뱅이처럼 살아 오셨다는 사실이다. 제대로 서보지도 못하고 앉아서만 줄곧 생활해 오셨다는 것이다. 외부에서 온 우리보다 같이 살고 있는 동네사람들이 더 놀란다. 그러면서 할머니 손을 잡고 너무나도 좋아라 하면서 그 난장 속에서 같이 어우러진다. 옆에 있던 중늙은이 며느리는 연신 눈가를 훔치며 서있다.
소설 같은 이 한 장면은 예전에 서해안 어느 마을에서 풍물과 그 지역에 전승되던 민요를 배우고, 배운 것을 가지고 발표회 겸 마을사람들과 마을축제를 열 때 보았던 장면이다. 그 할머니를 일으켜 세운 것은 과연 무엇인가? 몇 년째 걷지도, 일어서지도 못했던 그분을 춤추게 만든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눈으로 직접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한참을 그 ‘신명’이라는 것을 가지고 많이 씨름해왔다. 신명이 오르면 병든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더 나아가 이 사회에 건강함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여러 책을 통해 이론적 경험을 하긴 하지만 이때 실제적 사실을 확인한 것이 나의 문화관의 근간을 이루게 되었고 그것이 결국 문화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하게 된 계기였다.
요즘 많이 힘들다고 한다. 그렇다고, 캄캄한 어둠이 계속 된다고 주저앉아 있을 수만 없지 않겠는가? 그럴수록 더 우리의 신명을 불러일으킬 때인 것 같다. 우리 서로의 신명을 깨워 일으켜보자. 그리고 그 신명을 가지고 한판 놀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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