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 맞선 세계인의 투쟁... 민족의 빚 잊지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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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90주년]승리의 역사를 가다 9. 임정을 도운 외국인들

  • 승인 2009-11-26 10:07
  • 신문게재 2009-05-01 13면
  • 상하이ㆍ자싱=맹창호 기자상하이ㆍ자싱=맹창호 기자
일본 제국주의의 팽창에 맞선 우리의 독립운동은 한민족만의 외로운 투쟁이 아니었다. 임시정부 이전부터 수 많은 외국인들이 반제국주의의 입장에서 혹은 동병상련의 아픔에서 한국의 독립을 지지했고 일제의 잔혹한 침략상을 세계에 폭로했다. 이들의 도움은 한국 스스로 독립을 향해 나아가는 중요 원동력이자 기나긴 역사투쟁에서 승리하는 발판이 돼줬다.

 파리강화회담에서 프랑스인들은‘한국 친우회’를 결성해 임시정부가 국제적인 협력을 얻도록 공헌했다. 중국의 지도자 쑨원과 장제스, 주원라이 등은 한국청년들을 사관학교에 입학시키거나 지원해 독립역량을 키우도록 돕고 독립군과 의용군, 광복군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중국인들은 온몸을 불사르는 작탄투쟁에 폭탄을 공급해주고 피신자리를 만들어 줬다.

 지구 반대편에서 체코슬로바키아 군대는 블라디보스톡에서 임시정부에 무기와 탄약을 지원해줬고 이중 상당수가 김좌진 장군의 북로군정서군에 넘겨져 1920년 10월 청산리전투의 대승에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 김구의 피신처인 자싱에서 촬영된 임시정부 요인과 추푸청 일가의 사진 추씨의 아들과 양아들 며느리 등 일가가 김구와 이동녕 등 임시정부 요인들을 좌우에서 보호하듯 사진을 찍었다<왼쪽 사진>. 파리강화회담에 파견된 대한민국임시정부 대표부와 현지 프랑스 직원들<오른쪽 사진>
▲ 김구의 피신처인 자싱에서 촬영된 임시정부 요인과 추푸청 일가의 사진 추씨의 아들과 양아들 며느리 등 일가가 김구와 이동녕 등 임시정부 요인들을 좌우에서 보호하듯 사진을 찍었다<왼쪽 사진>. 파리강화회담에 파견된 대한민국임시정부 대표부와 현지 프랑스 직원들<오른쪽 사진>

 국내에서는 의료선교사 스코필드가 일제의 제암리교회 만행을 세계에 알리고 일본에서 열린 극동지구 선교사 총회에서 3·1 운동과 일제의 폭압을 800여명의 선교사들에게 알려 34번째 민족지도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변호사 후세 다쓰지는 비록 일본인였지만 제국회의가 열리는 일본 왕궁에 폭탄을 던진 의열단원 등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무죄를 법정에서 주장하며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김구는 백범일지에서“나라가 독립되면 나의 자손이나 나의 겨레는 누가 이러한 성의와 친절에 감동치 않을 수 있겠는가”고 술회했지만 이들은 임시정부가 무관심 속에 잊어지듯 그렇게 잊어지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의 지원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가장 필요한 것은 독립자금이었다. 안창호 등 몇몇 명망가를 중심으로 교포성금 등에 의해 임시정부가 운영됐지만 한계가 있었다. 임시정부는 일본과 적대관계의 주변국에게 자금지원을 요청하게 된다. 이는 단순한 자금지원 뿐 아니라 일본을 공동의 적으로 삼는 효과를 가져왔다. 즉 일본에 강점당한 상태였지만 임시정부는 독립전쟁을 치루는 입장을 여러국가가 인정하고 지원하는 1석2조의 효과를 보게 됐다.

성과는 러시아에서 먼저 나왔다. 1920년 10월 모스크바 야로슬라프스키역에선 300㎏의 금덩이를 나눠담은 궤짝 일곱상자가 까라한 외무차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시베리아 철도에 실렸다. 이 황금은 당시 40만 루불의 가치를 지녔다. 지금의 금값으로 환산해도 100억원이 넘는 돈이다. 임시정부의 신임장을 갖고 러시아로 출발한지 10개월 만에 특파원 한형권은 레닌으로부터 모두 200만 루불의 지원금을 받기로 하고 1차로 기차에 실린 40만 루불을 수령했다.

 당시 러시아는 볼세비키 혁명을 추진하는 어려운 과정이었지만 레닌은 식민치하의 한국인들의 3.1운동과 이후 독립운동 과정을 보고 깊은 감명과 함께 지원을 결정했다. 러시아내 한인들이 볼세비키혁명에 가담하고 2만여 한인 빨치산이 일본군과 싸우는데 대한 보답의 뜻이기도 했다. 레닌은 특히 “식민치하에서 공산주의 혁명보다는 민족혁명(독립)이 우선”이라며“임시정부가 주도세력여야 한다”고 절대적 신임을 보냈다.

▲ 임정의 독립운동에 기여한 추푸청의 유가족에게 1996년 9월 김영삼대통령 명의로 건국훈장 독립장이 전달됐다. 김구의 차남 김신<사진 왼쪽에서두번째>이 자싱을 방문, 당시의 상황을 회고하고 추푸청의 후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달하고 있다.
▲ 임정의 독립운동에 기여한 추푸청의 유가족에게 1996년 9월 김영삼대통령 명의로 건국훈장 독립장이 전달됐다. 김구의 차남 김신<사진 왼쪽에서두번째>이 자싱을 방문, 당시의 상황을 회고하고 추푸청의 후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달하고 있다.
 이 자금은 이해 12월 국무총리 이동휘의 비서장 김립이 넘겨 받아 상해로 들여와 많은 운동가의 독립자금으로 사용되었지만 안타깝게 자금소재를 둘러싸고 임시정부와 한인사회당 사이에 알력이 발생한다. 결국 이동휘는 이 사건을 계기로 총리직을 사임하고 그의 비서는 암살을 당하게 된다.

 중국 쑨원의 호법정부(護法政府) 역시 임시정부를 적극 지원했다. 1921년 11월 3일 쑨원은 임시정부 국무총리 신규식을 북벌서고식 전례에 초청해 공식 국빈사절로 접견의식을 가졌다. 쑨원은 이날 회견에서 신규식의 5가지 요구사항을 대부분 수락하고 1924년 황포군관학교에 한인청년 73명을 입교시키는 등 군사간부를 육성하는데 지원했다.

 중국정부가 본격적으로 임시정부를 지우너한 것은 1932년 윤봉길의거 이후다. 장제스는 의거 이후 김구를 난징으로 초청해 비밀회견을 갖고 낙양군관학교에 한국인반을 반드는 등 본격적으로 군사지원대책을 마련한다. 의열단의 김원봉 역시 황포군관학교 동기인 등걸을 통해 장제스로부터 군사자금을 지원받아 난징에 조선혁명간부학교를 설립했다.

 장제스는 이후 임시정부가 충칭에 안착하기까지 8년 동안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정착 이후에도 광복군의 설립 및 활동은 물론 일제의 패망 이후 중국내 한국인의 귀국과 임시정부의 활동을 위해 막대한 지금을 지원하기도 했다. 

 ▲임시정부를 지킨 외국인들
 1932년 윤봉길의거 직후 임시정부는 피신처를 찾는 일이 급선무였다. 임시정부 군무장 김철은 상하이 외국인 YMCA 간사인 미국인 목사 피치(George A. Fitch)에게 은신처를 교섭했다. 그의 집은 프랑스 조계지로 비교적 안전이 보장됐는데 미국인이라 함부로 가택수색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피치목사 아버지는 생전에 한국 독립운동가들에게 동정적이었고 일본인을 싫어했고, 중국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반일사상이 강했다. 피치는 흔쾌히 자신의 집 2층을 모두 내어 김구일행의 피신처로 제공했다. 이곳에서 김구와 김철, 안공근, 엄항섭 네사람은 자싱으로 탈출하기까지 20여 일간 피치 부인의 정성스런 식사까지 대접받는다. 피치부인은‘홍구공원작탄사건진상’이란 제목의 김구 성명을 영문으로 작성해 로이터 통신에 보내는 일까지 담당한다. 

▲ 김구가 피신했던 추푸청의 며느리인 주가애의 친정별장인 재청별서. 사진속 재청별서에는 현재 기념관이 조성돼 있다.
▲ 김구가 피신했던 추푸청의 며느리인 주가애의 친정별장인 재청별서. 사진속 재청별서에는 현재 기념관이 조성돼 있다.

 하지만, 피치목사의 전화를 지나치게 많아 사용한 탓에 은신처가 정탐꾼들에게 드러나자 김구 일행은 상하이를 탈출해 자싱으로 향한다. 이제부터 김구를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들의 보호는 피치목사에서 상하이대 법대 학장인 중국인 추푸청 일가에게로 넘어간다.

 추푸청은 중국 신해혁명의 원로이자 애국민주인사로 자신과 가족의 위험을 무릎쓰고 김구와 독립운동가들을 자신의 고향인 자싱으로 피신시켜 신변을 보호했다. 이때부터 그의 아들 추펑장과 며느리 주가애, 양아들인 첸둥성은 여러차례 옮겨가며 김구를 비롯한 독립운동가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한다.

 김구는 주가애가 산후 조리도 못하고 자신의 친정 별장에 피신시키는 상황에 대해“나는 우리일행이 산을 넘어가는 모습을 활동사진기로 생생하게 담아 만대 자손에게 전해줄 마음이 간절하였다.… (중략)

우리 국가가 독립이 된다면 우리 자손이나 동포 누가 저 부인의 용감성과 친절을 흠모하고 존경하지 않으리요. 활동사진은 찍어두지 못해 문자로나마 후세에 전한다”고 당시의 감회를 백범일지에 기록했다.
 사실 윤봉길의사가 거사에 사용한 물통폭탄과 도시락폭탄 역시 중국 상하이 병기창에서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20회의 뇌관실험을 통해 20개를 제작해 무료로 제공해줬다. 따라서 윤봉길의거는 외국인들의 도움으로 거사가 성공하고 임시정부가 안전하게 상하이를 탈출할 수 있었다.

 난징대 이공충 연구원(역사학)은“30년대 초 한국독립운동이 저조기에 들어갔고 김구 등 한국임시정부 요인들도 일본의 추적을 당해 거의 숨을 것도 없는 지경이었다”며“당시 국민정부는 그들에게 보호처와 전문군사훈련을 제공해 임시정부의 역량을 보존해줘 후에 독립운동에 좋은 밑걸음이 됐다”고 지적했다. /상하이ㆍ자싱=맹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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