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는 뱀파이어의 피였다. 불치의 환자가 죽어가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바라보던 신부(神父) 상현은 백신 개발 시험에 자진해서 참여한다. 하지만 바이러스 감염으로 죽음에 이르게 되고 출처 불명의 피를 수혈 받아 기적적으로 소생한다. 라 여사는 상현이 치유력을 지니게 됐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와 아들 강우의 병을 고쳐달라고 매달린다. 강우는 상현이 어린 시절 친구임을 알아보고 반기는데, 강우의 집을 드나들던 상현은 강우의 아내 태주에게 격정적으로 끌리기 시작한다.
그런데 송강호란 배우는 전혀 거기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래서 난 오히려 이 사람이 정말 기존 뱀파이어 영화들과는 다른 굉장히 새로운 영화를 만들 수 있겠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JSA’가 2000년 작품이었으니 ‘박쥐’는 ‘10년 프로젝트’인 셈이다. 그 결과는? 충무로에서 가장 화려한 행보를 걷고 있는 감독, 박찬욱의 작가적 야심이 그대로 드러난 영화로 빚어졌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저에게 다음과 같은 것을 허락하소서. …두 뺨을 떼어내어 그 위로 눈물이 흐를 수 없게 하시고, 어깨와 등뼈가 굽어져 어떤 짐도 질 수 없게 하소서. 머리에 종양이 든 환자처럼 올바른 지력을 갖지 못하게 하시고, 영원히 순결에 바쳐진 부분을 능욕하여 어떤 자부심도 갖지 못하게 하시며 저를 치욕 속에 있게 하소서. 아무도 저를 위해 기도하지 못하게 하시고, 다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만이 저를 불쌍히 여기도록 하소서.”
이걸 신부의 기도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뱀파이어의 기도라고 해야 하는가. 당혹스럽다.
‘박쥐’의 오프닝은 꽤나 시(詩)적이다. 고전 흑백영화를 보는 것처럼 벽에 비친 나무 그림자 장면으로 시작된다. 묵직한 장면에 툭하고 던져지는 첫 대사. 주인공 상현이 누군가의 질문에 대답한다.
“당근이죠.”
‘붕대를 감은 성자’로 추앙받는 투철하고 고지식한 신부의 대답치고는 ‘깬다’. 당혹스럽다.
당혹스러움은 영화를 보고나서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를 어떻게 봐야 할 건가. 지독한 멜로인가. 아니면 악마적인 매력의 팜므파탈이 등장하는 범죄극인가. 전혀 새로운 변종 뱀파이어 영화일까. 죄의식과 구원을 넘나드는 일종의 종교 영화일까.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유혈이 낭자한 파국 속에서도 웃음 짓게 만드는 블랙코미디로 봐야 할까.
웃음이 나오면 웃고 불쾌하면 찡그리면 된다. 걸작이라 여기면 걸작일 테고, 뭐 졸작이라면 또 졸작일 터이다. 박찬욱의 영화 세계에 공감하지 못하고 이해가 안 된다고 해서 잘못된 거 뭐가 있겠나.
한 가지 장담할 수 있는 건 시작부터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130분 러닝타임 내내 스크린에서 눈과 귀를 떼지 못할 거란 거다. 그리고 그 강렬한 경험에 전율할 지도 모른다.
박찬욱은 정말 끝까지 간다. 이야기든 스타일이든 연기든 ‘박쥐’는 ‘독하게’ 밀어붙여 끝장을 보고야 만다. 선혈은 낭자하고 에로티시즘은 격정적이다. 게다가 캐릭터며, 에피소드며, 이를 풀어가는 방식이며, 디테일까지, 이제껏 본 적이 없는 것들로 가득하다.
어떤 이들에겐 새로움으로 가득한 신천지를 만나는 설렘을, 어떤 이들에겐 익숙하지 않은 것들의 향연이 거북스럽고 불편함을 안길 거다.
신부와 뱀파이어의 차이만큼이나 극단에서 극단으로 치닫는 ‘박쥐’가 그럼에도 친근하게 다가오는 건 배우들의 연기 때문이다. 단연코 송강호 때문이다. 영화의 주인공을 그가 맡지 않았다면, 하는 가정조차 불경스럽다 할 정도로 그의 연기는 놀랍다. 태주에게 절절히 구애하는 모습이나 다른 사람의 피를 빨대 마냥 호스로 빨아 먹는 장면,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자신의 전면을 올 누드로 드러내 내보이는 장면은 그가 아니었다면 소화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김옥빈의 연기 역시 중독성 있게 다가온다. 송강호의 연기가 ‘뺄셈’이라면 김옥빈은 ‘덧셈’한다. 영화의 후반부를 지배하는 건 팜므파탈로 변해가는 그녀의 표독스런 표정이다.
신하균 오달수 등 ‘즐거운 박찬욱 추종자’들은 예술한답시고 자꾸 지루하고 무거움의 늪으로 빠져드는 영화를 웃음으로 구원해낸다.
박찬욱은 불친절하다. 때문에 신부와 뱀파이어 차이만큼이나 관객들의 호(好), 불호(不好)가 확연히 갈리는 문제작이 될 듯하다.
사족(蛇足). 시사회 뒤 떠들썩했던 성기 노출은 결코 외설적이지도 않고 논란을 불러일으킬 만하지 않다. 송강호의 말마따나 “자연스럽고” “감추지 않았을 뿐”이다. /안순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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