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운하]경험과 반경험

  • 오피니언
  • 사외칼럼

[김운하]경험과 반경험

[중도춘추]김운하 소설가

  • 승인 2009-11-26 10:07
  • 신문게재 2009-05-01 20면
  • 김운하 소설가김운하 소설가
하루하루 바삐 흘러가는 일상생활 속에서 문득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마음은 서글퍼진다. 매 순간들이 그저 무의미한 경험들의 반복에 불과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 김운하 소설가
▲ 김운하 소설가
 독일어에는 경험(經驗)에 해당되는 독특한 두 단어가 있다. 에르파룽(Erfarung)과 에르레브니스(Erlebnis). 이 두 단어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경험을 의미한다. 영어에서 그 두 단어는 모두 익스피리언스(Experience)로 번역된다.

 우리말 ‘경험’과 영어의Experience에 해당되는 단어는 전자, Erfarung이다. 이 단어는원래 ‘여행하다’ 는 의미를 지닌 파렌(Faren)이라는 동사에서 유래한다. 즉 이 경험은 많이 여행하며 겪은 것들을 성찰을 통해 지성적으로 내면화시킨 경험을 의미한다. 이는 감각적 경험이 지적이고 내면적인 반성을 통해 고유한 특성을 가지게 되는 지속성과 응집성을 가진 경험이다.

 반면 한국어에 정확하게 대응하는 단어가 없는 Erlebnis는 전혀 다른 경험이다. 나는 이 경험을 ‘외험(外驗)’ 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 외험은 대단히 표피적인 인상적 반응에 불과한, 그래서 혼돈된 지각 경험이다. 불규칙하고 우연적이고 무계획적인, 대도시의 시내버스를 타고 바깥에 펼쳐지는 풍경을 스치듯 구경하며 지나가거나 번잡한 도심 거리를 휘리릭 돌아다니는 것과 같은 경험들이다. 그런 외험들은 의식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기보다, 감각을 지나 곧장 무의식의 영역 속으로 흡수되어 버리거나 또는 순식간에 스쳐지나가 쉽사리 망각되어 버리는 그런 것이다.

 한 마디로, 외험은 망각의 체계이다. 그런 의미에서 외험이란, 실제로는 반경험(反經驗)의 체계다. 독일의 문예 비평가 발터 벤야민은 현대의 거대한 대도시에서의 삶을 경험에서 외험으로의 이동상황으로 보았다. 벤야민에게 도시는 외험이 발흥하고 경험이 사망하는 장소, 경험이 너무나 파편화되고 즉각적이고 순간적이며 무차별한 나머지 이미지로만 남게 되는 그런 장소를 의미한다.

 내가 서글퍼지는 까닭은 벤야민이 지적한 것처럼 내 삶이 경험이 아닌 외험들로 채워지고 덧없이 흘러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늘 바쁘다 바뻐, 하며 분주하게 살아가지만 그 바쁨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지. 그런 바쁨들이 과연 내 삶을 얼마나 깊고 넓게 만들어주고 있는 것인지.

사실 시간과 속도에 내몰리는 현대인들에게는 모든 접촉과 작용들을 깊이 성찰하고 숙고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그러나 과연 이런 반경험의 체계로서 작동하는 삶의 방식은 현대적 삶의 필연성인가, 아니면 회피할 수도 있는데 우리 자신이 스스로를 그렇게 몰아가고 있는 것일까.

분명한 것은 현대사회라는 시스템 자체가 그런 반경험의 체계를 강요한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반대하고 저항하며 온전한 삶의 몫을 주장하는 것은 주체의 몫, 바로 개개인들의 의지와 노력의 몫이라는 점일 것이다. 반경험조차도 경험이 되게 하라, 나는 오늘 스스로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상명대, 제25회 대한민국 반도체설계대전 'SK하이닉스상' 수상
  2. 충남대병원, 만성폐쇄성폐질환 적정성 평가 1등급
  3. 생명종합사회복지관, 제15회 시가 익어가는 마을 'ON마을축제'
  4. 서구 소외계층 60가정에 밑반찬 봉사
  5. 샛별재가노인복지센터 생태로운 가을 나들이
  1. [날씨] 단풍 절정 앞두고 이번 주말 따뜻한 날씨 이어져
  2. 한국건강관리협회, 창립 60주년 6㎞ 걷기대회 개최
  3. 대전 노은지구대, 공동체 치안 위해 '찾아가는 간담회' 실시
  4. 찾아가는 마을돌봄서비스 ‘마음아 안녕’ 활동 공유회
  5. 외출제한 명령 위반하고 오토바이 훔친 비행청소년 소년원행

헤드라인 뉴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 대전에 집결한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 대전에 집결한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이 대전에 집결한다. 대전시는 '2025년 중소기업융합대전'개최지로 25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올해 행사에서 대회기를 이양받았다. 내년 대회는 대전 컨벤션센터에서 열린다. '중소기업융합대전'은 중소기업융합중앙회 주관으로 중소기업인들 간 업종 경계를 넘어 교류하는 것이 목적이다. 분야별 협업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지역별 순회하는 화합 행사 성격도 띠고 있다. 2004년 중소기업 한마음대회로 시작해 2014년 정부 행사로 격상되었으며 2019년부터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공동으로 개최하고 있다..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의 한 사립대학 총장이 여교수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경찰이 수사에 나선 가운데, 대학노조가 총장과 이사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대학 측은 성추행은 사실무근이라며 피해 교수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전국교수노동조합 A 대학 지회는 24일 학내에서 대학 총장 B 씨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성추행 피해를 주장하는 여교수 C 씨도 함께 현장에 나왔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C 씨는 노조원의 말을 빌려 당시 피해 상황을 설명했다. C 씨와 노조에 따르면, 비정년 트랙 신임 여교수인 C 씨는..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20대 신규 대원들 환영합니다." 23일 오후 5시 대전병무청 2층. 전국 최초 20대 위주의 자율방범대가 출범하는 위촉식 현장을 찾았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자원한 신입 대원들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첫인사를 건넸다. 첫 순찰을 앞둔 신입 대원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고, 맞은 편에는 오랜만에 젊은 대원을 맞이해 조금은 어색해하는 듯한 문화1동 자율방범대원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위촉식 축사를 통해 "주민 참여 치안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자율방범대는 시민들이 안전을 체감하도록..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장애인 구직 행렬 장애인 구직 행렬

  •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